형들이 겪은 밤, 먼발치 한 꼬마.

홀로 뛰던 내가 처음 누군가와 어깨를 함께한 것은 어느덧 5년 전, 우연한 기회에 그 첫 공간 보라매를 어제 다녀왔다. 공군사관학교가 떠나고 서울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원 옆에서 한참을 공을 차다 새 찬 바람에 “덕현아”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거기 아무도 없었다. 형들의 그때가, 내게 보였다.

우리가 팀이 될 줄 몰랐다. 모든 면에서, 성격과 살아온 상황, 달리는 속도와 달리기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이나 방식, 달리기에 필요한 운동화나 제품에 대한 감각까지 서로 다른 사람이었고, 이번 달림에 함께 하고서 다음 달리기까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어울림이었다. 멀리는 울산, 포항에서, 가까운 곳은 우리 집 5분 거리에 있던 오피스텔에서 모이던 형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서울 여기저기서 열리던 유한회사 나이키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모꼬지를 벌이던 우리. 티셔츠도 따로 맞추고 별도의 회합을 길게 하면서 더 각별해졌다. 대회 일정도 짜 부산, 대전 등 지방도 함께 다녔다. 함께 4천 리(1,000km)를 넘게 뛰어 박수도 치고 그중 몇몇은 풀코스 마라톤이나 해외 사막 마라톤 같은 곳에 도전하기도 했다. 기념 용품도 만들고 국내 미출시 제품 품앗이도 하고 안 쓰는 티셔츠를 모아 기증하기도 하고 달리기와 연계한 소액 기부, 연탄 봉사 등 자원봉사도 다녔다.

외연이 넓어지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

그런데, 그러다 한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길로 돌아갔다. 큰 싸움이 났거나, 팀이 와해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견디며 자라는 일상을 짓고 있었다.

아쉽다 슬프다 경황이 없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 생각하다 형들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회사에 들어가 갑작스러운 적응을 하는 형과 인사이동을 당한 형, 애인이 바뀌거나 이직을 한 형도 있었다. 물론 다른 취미를 가진 형도 그대로 달리기에 모든 것을 쏟은 형까지 다양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의 간격을 뚫고 찾아오는 많은 사이시옷과 온점을 맞이하며 그렇게 엔트로피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그 모든 게, 형들의 나이가 된 지금의 내게 찾아왔다가 다시 멀어져 간다. 바뀐 회사에서 오는 고뇌와 대학원 졸업 학기에 맞이한, 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 만들고 운영하던 달리기 모임이나 해외 거주에 대한 두려움, 법적 혼인신고와 인간관계에 대한 정의까지. 마음에 지진이 나고 낙엽에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들, 이미 다 정립됐다 생각한 개념이 뿌리에서부터 썩어버려 흔적만 남은 게 지금의 나.

오래돼 집기도 전에 부스러지는 고민을 상념의 웅덩이에 통째로 버리려 했다. 다 뒤범벅돼 나조차도 알 수 없게. 바로 그때, 멀리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친구 앙리 기요메가 걸어온다. 죽지 않고, 어둠 속 방향조차 알 수 없는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들고 삶으로 돌아온 그와 같이 내 고된 생의 감각이 단풍과 함께 정열로 물들길 바라는 것이다. 힘을 잃고 넘어졌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나, 사람의 대지를 딛고 조금씩 오래된 몸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마음이 마음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형들의 뒷모습에서 부끄러운 내 지금을 보고 있다. 그날 보라매 언덕, 등 뒤에 형들은 없었다. 다시 처음처럼 고민하는 한 꼬마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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