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을 기억한다.

일본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인생외길人生一路을 듣는다. 진득한 히바리의 목소리와 가벼운 율동마저 생각나는 음악에 어깨가 들썩일 것 같다가 다시 차분해진다. 보통 외국 음악을 들을 때 그 가사를 샅샅이 찾아보는 편은 아니며 영미권 노래면 들리는 대로 느끼는데 왠지 찾아보고 싶어지는 노래 제목이라 가사를 찾아 억지로 번역해 본다. 퍽 근성 있는 가사, ‘가슴에 불꽃을 안고 마음 굳힌 이 길을 세차게 똑바로 걷자는 나에게 하는 쓴소리로 들렸다가 그다음 구절에서 무릎이 탁 풀린다. 꽃은 고생의 바람에 핀다, 며 마지막 탄성을 내지르는 듯한 마무리. 삶은 그렇게 끝까지 끌고 가봐야 아는 것이었나 보다. 어떤 일이나 태도를 ‘끝까지 끌고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며 내 최근 고민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어떤 명제도 함께 걸려 있기 때문인데, 그 끝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바로 그것일테다.

배우 김주혁이 떠난 자리가 크다. 그 자리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 그와의 인연은 없을뿐더러 그가 나온 작품을 모조리 섭렵할 만큼 깊은 애정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주말에 드라마아르곤을 몰아 보려 했던 내게 떨어진 그의 비보는마왕신해철이 떠났을 때 느꼈던 충격이었다. 마음 곳곳에 작은 조각들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가슴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사고 소식을 접한 후 곧바로 해당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사고는 맞는데 사망이 맞는지는 본인들도 확인이 필요하단다. 그러는 사이 A사에서 사망단독기사를 올렸다.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다 문득 연예부, 해당지역 사건팀도 아닌데 괜한 적극성을 띤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지다 다시 정신을 차렸다. 사람의 생과 사가 갈리게 생겼는데 부서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이런저런 정보를 주워다가 연예부 등에 전달했다. 그리고서야 퇴근을 위해 짐을 쌌다. 다음 약속은 한참 늦은 상태, 면목 없는 체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좀처럼 특정 연예인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출연했단 예능과 드라마를 본 일도 없다, 오직 영화로 그를 봐왔다. 주변의 통상적인 지인들도 예능, 드라마 혹은 나처럼 영화를 통해 단편적인 모습을 조각한 게 대부분이었다. 또 이 일 전에 김주혁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을 본 적 없었다. 모든 작품을 다 봤다는 이도 주위에 없고, 드러내팬질을 한만큼 눈에 띄는 배우도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망 소식을 접한 길 위의 사람들 가슴에 뚫린 구멍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압도하는메소드 연기가 아니더라도, 천만 관객을 부르는블록버스터 영화에 얼굴을 비추지 않더라도 그의 차분하고 정갈하며 자연스러운 연기는 다양한 작품과 장르에 걸쳐 활동하며 미소와 우수,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던 것이다. 2017년 지금을 기준해 이토록 넓은 세대에 두루 알려지고 편안하던 배우가 있던가 생각하니 그리 쉽게 누군가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 누리집의 댓글에는 형, 삼촌, 같이 늙어가던 동년배 같은 배우라는 표현이 많았다.

김주혁을 기억한다. 아직 보지 않은 그의 작품이 많은 것이 다행인지 아니면 또 다른 슬픔인지 구별하지 않기로 했다. 수많은 사진에서 조금은 어색한 듯 미소를 짓던 그의 웃음은 결코 억지가 아닌 자연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아버지를 존경해 어디서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넉넉했던사람의 배우’, 감사와 애도 그리고 오래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눌러 적는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한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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