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그게 사랑이 아니라 하자.

선선해, 다만 바닷바람 냄새만 없는 옥상 아래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 축음기에서 나오는 쳇베이커의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들어. 푸른 피가 아래에서부터 흐르는 기분, 멀리 보이는 한강에는 등대가 없는데 어쩐지 등불의 빛이 보이는 까닭은 계절이 겨우 가을을 비껴가고 있기 때문일까.

준수와 네 일은 정말 안 됐어. , 그래. 사실 내가 따로 준수와 연락하고 있다는 것, 너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준수도 고통스러워해. 하지만 그 이야기를 굳이 네게 다시 한다는 것은 필요 이상의 소통인 것 같고, 어쩌면 원하지 않게 내가 악마가 되는 길일 테니 하지 않으려 해.

선택한 것은 너랬지. 사실 고통하고 행복은, 그래, 지금 말하는 행복은 예로 드는 행복이 아니라 너와 걔가 지녔던 행복이야, 누가 더 사랑했건 덜 사랑했건 할 것 없이 각자의 것이지만, 너와 준수 안에서는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어떤 감정도 그렇다는 것쯤은 이미 지난 연애나 그 전의 수많은 사랑 속에서도 느꼈던 거잖아. 사실 네 연애, 내가 한두번 본 것은 아니니 내가 이런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어떻게 백이 되니. 기분이나 상태, 깊이에 따라 이백이 됐다가 십 오가 됐다 하는데.

내가 본 너와 준수는, 내가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이백은 넘어 보였다, 사실. 둘 다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 너희 만날 때면 세 번 중 한번은 나와 함께였잖아, 우리 셋이 친하게 지낸 지가 좀 오래됐니. 그래서 좀 기대를 했지. 그래도 우리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너희 모습이 하루하루씩 더 채워질 것 같다고 말이야. 그렇게 맞이한 겨울과 봄, 너희 둘이 처음으로 함께 떠났던교제 2주년 기념여행은 베니스. 이탈리아의 바람 맛이라며 넌 다른 선물 제쳐두고 소금을 사 왔고, 준수는 내게 디제스티프digestifs를 건넸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 선물들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구나.

너희가 등을 돌린 이유를 여전히 알지 못하고, 모두 들을 수도 없을테지. 각자에게 맞게 재단된 그런 이유나,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자해는 사실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자의식에서 비롯된 방어기제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수희야. 난 너와 준수 모두를 안아주고 싶어. 뻔한 소리를 하는 것도, 괜히 다 아는 것처럼 감정을 젠체하려는 것도 아니야. 둘다 가슴 서로 다른 위치에 어떤 구멍이 보여서, 내가 다 막아 줄 수 없지만 짧은 면피쯤은 되지 않을까 하여 그래. 우리 셋이 서로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에 밖에 존재할 수 없게 됐지만 그것은 해패해서가 아니야. 그냥, 그렇게 된 거야. 우리가 삶을 모두 알려 하지 말자. 일단은 그렇게 두는 편이 낫겠어. 수희야, 이리와.

One Comment

  1.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자해는 사실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자의식에서 비롯된 방어기제”

    이 표현을 보는 순간, 멈췄어요. ‘아, 그런 방어기제에서 나온 생각이었을 수 있겠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 제가 늘 그랬거든요. 친한 지인들은 나쁜 사람이라 해도 저는 끝까지. 지금도 그러고 있는걸까요. 그런 셈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요. 그렇게 안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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