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생의 꿈

오늘 아침은 유난히 밤 같았다. 이른 밤이면 선선한 감각이 피부 끝부터 느껴진다. 곳곳이 시려 온다. 굳이 달리면서 공기와 내 몸을 마찰시키지 않아도 센 바람이 나를 덮친다. 우연이었을까. 간지도 모르게 여름이 가고, 가을도 따라 달음 박하고 오늘은 겨울이 왔다.

온도뿐만 아니라, 빛 또한 밤 같았다. 커튼을 치지 않았다. 요새 해가 짧아진 탓에 새벽에 짙은 빛이 내 방을 껴안지 않는다. 나 또한 그 덜한 빛이 슬프거나 고깝지 않아 그저 그대로 둔다. 눈을 떠 보일러 눈금을 보니 방은 16도, 이제 일어날 만한 시간이 됐다.

아침이면 한참 고민에 빠지던 날이 있다. 노래를 잔잔히 틀어두고 지금껏 걸어온, 다시 돌릴 수 없는 날들을 머릿속에 돌려본다. 아날로그 35mm 포지티브 필름을 꽂고 슬라이드 영사기로 내 날들을 벽에 크게 띄워 보듯이, 그것들은 확대됐다 줄어들기를 반복해. 어떤 날들은 내게 크게 맺혔다가 줄어들고, 어떤 시간은 가장 좁게 압축돼 있다 불현듯 가슴 속으로 달려온다.

그것들이 나를 만들고 있다. 만든다기보다 ‘그게 나를 만든다’는 생각이 나의 곁에 오래 있다.

아침에 맞춰 둔 종鐘은 모두 다섯 차례 나를 때린다. 인공지능 확성기도 나를 부른다. 추억이 다시 해마 안으로 퇴근한다. 다시 먹고 마시며, 여러가지를 묻고 답해야 할 당장을 견딜 때. 두 겹의 이불과 전기 담요, 후드티가 감싸고 있던 몸을 일으키다 여름이, 여름이, 찬란하고 우리를 감싸던 빛이 지나쳐 간, 아직 무의식에 들지 못하는 과거가 남았다는 게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껴졌다. 행복한 그 날. 굳이 모든 날이 행복하지 않았다 해도 내게 남은 순간은 모두 뜨거웠는데. 지금은 겨우 영상 십 육도. 바깥은 영상 일 도에요, 라고 인공지능 확성기가 내게 말해준다.

계절은 시간을 따라 다시 오겠지만, 그 여름은 그 여름뿐이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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