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가를 떠나며, 싸구려 캔커피

볼 일이 있어 오랜만에 성북구를 밟았다. 버스로 성큼 지나갈 때 말고 내려서 땅에 발을 댄 내 생 첫 길음동. 성북동은 따뜻한 빛이 춥게 내리는 세계, 출구를 통해 올라오자 닫아서 어둠만 남은 가게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손칼국수와 수제비, 바로 옆 가게는 소머리 곰탕과 해물탕을 판다 걸어놓고 모두 철문을 내린 닫힌 세계. 그 앞에 할머니 두 명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다 구석을 지나는 남자를 보더니 따라간다. 혼자 남은 다른 할머니, 내 쪽을 힐끔힐끔 보다 그 건물의 노쇠를 사진기에 담으려는 나를 의식한 듯 뒤돌아 다른 골목으로 빼꼼한 걸음을 걷는다. 간판을 청사진으로 남기고야 쳐다보게 된 24시간 이동 제한 간판, 여기가 미아리 텍사스구나.

성매매와 관련된 취재에 관심을 두던 때가 있었다. 이제 삭제돼 복구할 수도 없는 블로그에 그런 취재기를 꾸준히 올리기도 했다. 부산에 살 적엔 부산역 근처와 서면 뒷골목, 서울에 올라와서는 서울대 입구역 근처와 마포구 어귀, 또 강남 언저리. 편의점이나 카페 같은 곳에 앉아있으면 국산 승합차나 외제 승용차가 온통 썬팅을 하고서 노래방이나 오피스텔 같은 곳을 돈다. 30분 정도에 한 바퀴, 차에 탄 사람은 자꾸만 바뀌는데 저 이들은 어디에서 나와 어떻게 돈을 주고 받는지, 그런 승합차가 도는 걸 빤히 보이는 거리에 멈춰 서 있는 경찰차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궁금해 업소 입구에 선 관리자에게 뭔가를 물으려다 말 그대로 죽을 뻔 하기도 두어 차례. 물론 CCTV가 있는 걸 먼저 보고 호기롭게 들이댄 탓에이 이가 나를 죽이진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고 당돌하게 돌진했다. 그렇지만 뭐라도 하고 싶던 그런 때가 있었다. 부장도 없으니 무얼 발제하겠다 고민할 필요 없이 어디까지 취재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이게 황색 저널리즘인지 백색 저널리즘인지 검은색 저널리즘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던 그런 날.

골목 앞에 택시가 한 대 서 있다. 운전석 뒤편 좌석을 빼고 운전석, 조수석, 조수석 뒤편 좌석 문이 모두 열려있다. ‘텍사스촌에 내려진 발 사이로 아주머니와 운전기사가 나온다. 잔뜩 싼 짐, 국제우편 상자 사이로는 아무렇게나 넣은 옷가지와 샴푸 뚜껑같은 게 보인다. 그걸 모두 싣는다. 겨우 두 박스하고 정말 작은 검정 배낭 하나. 뒤이어 분홍색, 날 좋은 시기의 벚꽃 빛을 연상케 하는 운동복을 입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이 하나가 얼굴을 잔뜩 가린 채 달음박 하듯 뛰쳐나와 뒷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다시 앞자리로 고쳐 앉는다. 아주머니는 주머니에서 캔커피 두 개를 꺼내 하나는 택시 운전기사에게, 또 하나는 벚꽃빛 이에게 건넨다. 멀리서, 조심히 바라보던 나는 그저 두 단어를 들었다. 사실 그 두 단어면 충분했을 거다. “그래, 그래

편의점에서 볼 수 없는, 대형마트에서 최저가로 팔아 회사 단합대회나 싸구려 여인숙에서 볼 법한 그 커피가 온종일 다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감정을 이입 하래도 할 수 없고, 하지 못할 그런 일들이 있다. 그저 바라보고 그걸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독자도 많고, 혹은 그 시선 만으로도 불편함을 말하는 이도 많다. 그렇지만 오래된 치기의, 조정자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 여전히 내 고향 마을 앞 바닷 속처럼 깊고 짙다.

택시는 미아 사거리 쪽으로 곧장 출발했다. 아마 조금만 더 가면 북서울꿈의 숲이 나올 거다. 아니면 코를 돌려 길음뉴타운’, 뉴타운에 따옴표는 내가 넣은 거다, 을 지나가겠지. 모두의 삶은 거칠다. 나 같은 남의 감정 이입보다 더 치열한 하루를 채우거나 혹은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그 박자는 쏟아져 각자를 때리고 있다. 택시 미터기는 잠깐 눈을 떼도 금세 올라가는데, 우리 삶의 행복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데도 채워보고자 이렇게 하루씩 다시 쌓아보자고, 내 주변 모두와 내가 보고 아는 모두 혹은 그 밖의 모든 사람을 응원해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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