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최전선

먼 곳에 다녀오자마자 가장 망측한 일의 최전선에 다녀왔다. 망측하다는 말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어그러져 어이가 없고 차마 보기 어렵다’는 상태를 나타낸다. 권력은 언제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활용돼야 하는 것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되지만 욕망대로 그것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용에 대해 누구도 조언하지도 저지하지도 않은 탓이다. 소위 ‘완장 문화’이라는 표현도 이와 궤를 함께하는 것 아닌지.

무척이나 솔직하게 여러 이야기를 내놓을 것 같던 분위기는 금세 삭막해졌다. 변호사나 누군가와 상의한 탓인지, 수위가 정해진 말이 반복된다. 면은 구겼으나 죄는 지옥에서 받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 또한 ‘예술 활동’으로 연장된다는 것일지 알 수 없다. 해체, 해체, 해체. 어렵게 만들어져 쉽게 해체되는 게 정말 많다. 이것은 또한 정상인가. 어이가 없고, 또 차마 보기 어렵다.

수모를 겪은 사람은 기자들의 복잡한 틈을 뒤로 하고 급히 빠져나와 차를 탔다. 문이 닫히기 전 그의 지인들이 손을 잡으며 “이 선생, 고생했어”라고 말한다. 어떤 고생을 말하는 것인지 물을 찰나, 문이 닫히고 곧장 떠나버린 차.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거리던 노년의 ‘정상적인 상태에서 어그러져 어이가 없고 차마 보기 어려운 사람’의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른다.

없는 방해

각박의 옷을 입는다. 길을 걷는다. 마음을 먹고 어떤 행동을 잇는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속여왔던 행동에 대해 자신있게 행동을 펼치고 어떤 것을 선과 악 아니면 선호와 혐오로 멀어지게 한다. 좋은 현상이다. 저마다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생을 펼치고 생각의 같고 다른 걸 알아갈 수 있다.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결국은 복잡할 일 없는 삶이야.

기자의 일을 하는 나는 나를 표현하는 일이 줄었다. 좋아하는 음악가나 괜찮게 생각하는 의류도 말하지 않는다. 정파성을 띠거나 이해관계에 속한 것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따뜻하게 생각하는 음료나 인류적 보편 사항에 대한 말이나 몇 개 뱉을 뿐이다. 물론 그런 인고는 공익이나 대중, 정의 또 인권 같은 것을 떼놓고 그 바깥에 치우치지 않는, 치우쳐서 안되는 사람들의 속죄라 칭할 수 있지만 인간이란 이들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을 수 있던가. 그런 절제와 조심은 일 밖의, 사실 내 삶과 더 가까운 나에게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사랑 같은 것이다.

누군가를 구속하겠다 생각했던 마음을 가진 적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사랑하면널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라는 드라마 대사가 평범하게 사람의 공기 속을 떠다닐 때다. 그러나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불가능했다. 그것은 때로 바람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고 경쟁에 놓이기도 했으며 또 금전적 한계, 데이트 비용 따위에도 막히곤 했다. 그 후로 지구 주변을 몇 번 도는 동안 내가 돌아버렸는지 욕망으로 사랑을 가지는 일은 내게 먼 일이 됐다. 서로의 상태를 둔 채 그대로 두는 조우는 좀처럼 길거나 짙게 지속하지 못했지만크게 상처받지 않는 게 낫다는 이불에 돌돌 말리듯정신승리같은 것에 포함됐다.

아침에 일어나 항우울제를, 점심을 먹을 때쯤 신경안정제를, 잠에 들때 수면제를 우리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갇힐 필요 없는 어떤 벽에 우리 스스로를 밀어넣을 필요가 없다. 또 마음의 길을 끊고 사랑의 방법을 재단해 방부제를 가득 채울 일도 없을 테다. 어떤 것도 마음에 거칠 것 없었는데, 지레 겁을 먹어버린 것은 아닌가. 의심의 안개는 내 눈꺼풀에 낀 기름 같은 없는 공포였다.

나는 상처받을 수 있다. 또 거절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태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어떤 서점 앞을 서성이다가

당신을 펴고자 한다. 당신은 책이다. 오래전 의지 외로 골라진 표지, 이음새의 풀, 꽤 된 잉크로 찍힌 하나밖에 없는 너다. 나와 함께 있다는 건, 이 서가에 꽂혀 있다는 건 스물 다섯 해 넘게, 아니면 서른 대여섯 해쯤 됐다는 것. 손때는 묻었지만 여전히 내용이 괜찮은, 당신은 책이다. 실은 내용이 온전치 못하다. 몇 군데는 찢어질 듯 너덜너덜해졌고 또 몇 쪽 뜯겨 겨우 다시 기웠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 떨어진 채 보관되다 사라져버린 단락이 있는가 하면 두 번 세 번 덧칠해 난해해진 곳도 있다. 진절머리나게 어려운 부분,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드는 쪽도, 너무 야해 다시 읽기 부끄러워 눈짓만으로 슬그머니 짐작해버리는 찰나도, 텅 빈 장에 두 세 글자로 기억되는 심정도, 어두운 밤 밝디밝은 가로등에 비춰서야 겨우 볼 수 있는 손톱자국 몇 개도. 당신은 책이다. 당신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