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서점 앞을 서성이다가

당신을 펴고자 한다. 당신은 책이다. 오래전 의지 외로 골라진 표지, 이음새의 풀, 꽤 된 잉크로 찍힌 하나밖에 없는 너다. 나와 함께 있다는 건, 이 서가에 꽂혀 있다는 건 스물 다섯 해 넘게, 아니면 서른 대여섯 해쯤 됐다는 것. 손때는 묻었지만 여전히 내용이 괜찮은, 당신은 책이다. 실은 내용이 온전치 못하다. 몇 군데는 찢어질 듯 너덜너덜해졌고 또 몇 쪽 뜯겨 겨우 다시 기웠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 떨어진 채 보관되다 사라져버린 단락이 있는가 하면 두 번 세 번 덧칠해 난해해진 곳도 있다. 진절머리나게 어려운 부분,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드는 쪽도, 너무 야해 다시 읽기 부끄러워 눈짓만으로 슬그머니 짐작해버리는 찰나도, 텅 빈 장에 두 세 글자로 기억되는 심정도, 어두운 밤 밝디밝은 가로등에 비춰서야 겨우 볼 수 있는 손톱자국 몇 개도. 당신은 책이다. 당신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