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빛, 생각쟁이, 그리고 호킹

1995년이었을 거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우리 집에 찾아온 어떤 방문판매원이었던가. 주변 추천이었던가. 우연히 읽게 됐던 잡지 ‘생각쟁이’. 웅진에서 나왔던 잡지로 당시 표현 총천연색인 그것은 한달에 한번 우리집 우편함에 꽂혔다. 3년인가 구독했을 거다.

열심히 봤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일이다. 그 책 말고도 다른 여러 책을 열심히 읽던 내게, 그 책은 그 외의 곳에서도 접할 수 있던 정보와 지식, 신문과 고서에 즐비했던 내용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땐 그렇게 꼬박꼬박 열심히 읽었다. 책을 기다리며 읽고 또 읽고, 그러다 눈까지 나빠져서 안경 도수가 점점 올라가던 ‘꼬마 척척 박사’에게, 꼭 필요하고 원했던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 탐구 생활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커버를 차지했다. 당시 유망했던 안철수를 비롯해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10대 열풍’을 주도한 멀티미디어 저작도구 ‘칵테일’ 제작자 이상엽, 야구선수 이승엽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내게 가장 영향을 줬던 것은 스티븐 호킹 박사다.

내 고향 여수의 밤바다는 넓고 어두웠다. 배가 떠난 항, 그 항구를 미끄러지듯 달리고 빠져나와 오른 자산공원이나 아파트 옥상에선 별빛이 그리도 밝았다. 가만히 쉬지 않고 걸음을 걸었던 행성들. 모두 잠든 틈을 타 올려다 본 별에선 휘이휘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무척이나 궁금했다. 별은 어디서 와 어디로 저렇게 빨리 길을 재촉하는 것인지. 질문과 질문 사이에는 공백이 있었고, 주부였던 엄마와 3교대 근무를 했던 아빠는 거기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때 호킹 박사는 내게 조용조용 이런 이유를 늘어놔 줬다.

두꺼운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를 고작 초등학생이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천재는 아니었거든. 그렇지만 그 책의 사진을 보며, 시간과 공간이 3차원으로 휘어 끝끝내 뚫리던 구멍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장노출로 만들어진 ‘화사한 시간과 공간의 집’을 누리며, 수차례 바뀌었던 꿈은 결국 과학자나 기자 그 주변부 어디론가로 정착해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열 아홉이 됐을 때, 결국 K대학 천문대기학과 수시를 봤지만 낙방. 그후 입학한 곳이 P대 대기환경과학과였다. 내가 뜻한 공부 가장자리라 생각했지만 간극은 컸고 그로 박사를 해 과학전문기자가 되기엔 너무 먼 시간, 그리고 나는 지금 서울고등검찰청 15층에서 이 글을 주절거리고 있다. 바깥은 어둠, 그리고 빛이 달리는 시간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기다리는 이 적막의 시간에도.

꿈은 휜다. 오직 곧게,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빛의 이동, 우린 여전히 그 순간을 살고 있다. 오래전 내 삶에 영향을, 또 크고 깊은 꿈을 준, 이제 빛이 돼 우주 어딘가를 가벼운 마음으로 달리고 있을 호킹 박사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매번 원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없다.

매번 원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없다. 매번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매번 원하는 결말은 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떠안게 되더라도 모두 함께 사는 세상에서 짖어도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면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 모든 순간에 잊지 말하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을 우리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친구를 때리지 말고, 사람에게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지 말고, 남의 인권을 생각하고 또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짓지 않는 것. 어른이 돼 가며 근의 공식과 부정적분같은 것을 잊더라도, 우리는 많은 것을 오래 전 이미 배웠다.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 단상

눈물이 펑펑 나왔다. 있는 그 자체로 멋진 도전자들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굴렁쇠 소년을 서른 해 전 하나의 원으로 마주 앉았던 사람들은 노인이 돼 의자에 앉았고 그 아래 아랫세대 소정 씨의 목소리는 곱고 맑게 바람을 채웠다.

하지가 절단돼 오래 다니면 그 끝이 하얗게 까맣게 닳는다. 가만히 있으면 빈 살의 마감, 그러나 생은 계속되고 월남전, 한국전쟁 참전 상이용사 등은 그 시절 ‘병신’ 소리 들으면서 끝끝내 삶을 채웠다. 팔이 없어도 자전거를 타고 쌀가마니를 배달했고 발목이 없어도 포장마차를 끌고 다녔던 사람들. 이 말이 결국 동정이나 감동으로 마칠 수 없는 이유는 내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갔고 별빛이 됐기 때문에.

빛 공해 없는 평창의 하늘은 무척 어두웠고 안개가 걷히지 않아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거기다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야 했으니 내 정신이 몹시 흐트러졌지만,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가슴이 뭉클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가수 소향과 성악가 조수미, 팝페라 가수 임형가 힘차게 소리를 내질렀고 사람들은 흥이 났다. 빛으로 채워졌고 폭죽은 하늘에 꽃을 피웠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별빛을 찾았다. 안개와 구름, 폭죽을 뚫고 어디선가 나를 내려보고 있을, 그 얕고 먼 나의 별을.

회사 이름을 걸고 나갈 글, 이런 게 담겼다.

1. 성화 점화 이후의 컬링 김영미 선수와 서순석 선수의 모습. 곧바로 중계 카메라는 가수 소향과 성악가 조수미로 넘어갔지만 난 여전히 선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참 따뜻했고 서순석 선수는 오늘 첫 승을 따냈다.

2. 자원봉사자 모습.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패럴림픽.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조금 더’ 필요한 구석이 군데군데 있다. 비슷해보이는 자원봉사자복이지만 그들은 조금 섬세하게 봉사하고 있다.

3. 세계인, 사실 미국 관광객의 모습. 올림픽에서 팀미국이 잘해낸 것에 대한 자긍심이 있지만 정작 경기는 패럴림픽 ‘직관’을 위해 한국을 처음 밟았다는 그. “패럴림픽은 올림픽 선수와 같은 경기력에 정신력까지 더해졌다”며 패럴림픽을 계속 사랑해가겠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끼익 끼익

고양이가 우는 줄 알았어요. 바람에 세차게 부는데 밖에서 끼익 끼익 소리가 나서, 조금 걱정이 돼 밖을 보니 마포구에서 걸어둔 태극기가 앞뒤로 펄럭거리는 소리더군요. 고양이가 울더라도 내가 뭐 해줄 게 있나요. 넌 어떤 일이니, 무슨 사연이니. 또 어떤 일로, 발정이 났거나 어떤 이가 던진 돌멩이에 맞은 이유인지 궁금해서 라도 하려 했지 뭐에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고양이도 돌멩이도 없고 내 눈길만 남았어요.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찬 날이네요.

비는 열을 식히고 오른 가슴을 내리고 긴장된 관자놀이를 한숨 쉬게 하는 군요.

지나간 계절은 결국 잊힐 겁니다, 추운 날 온기도 더운 날 시원한 손도,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미소, 뜨거운 숨결로. 그게 다음 사랑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래도 낡아가는 머리와 나빠지는 눈, 무뎌지는 성감대, 익숙해져가는 사회화에 기대 나는 언젠가 내가 나였던 날도 잊겠죠. 턱이 무척 떨려 부끄러워 하며 맞추던 입도, 당신을 향해 돌진하던 내 급행열차도 모두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갈 테여요. 당신 뺨에서 나던 살구나 복숭아 향기는 사실 즐겨 쓰던 에센스에서 비롯됐단 기억까지 그다음 연애나 그 전 만난 그이와 헷갈리는 때가 생길 겁니다.

그럼 저는 다시 무척 고통스러워할 거예요. 되게 울 거에요. 또 들리지 않는 고양이 소리를 찾을 겁니다. 구름 속에 흘러가는 해를 찾듯 모래밭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뛰어다닐 것이고, 이불 속에 동굴을 파 크게 소리가 울리듯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감정의 출구를 찾아가겠죠.

그렇지만 실록은 불에 타도 어디엔가 깊은 고요에 남아있고, 신의 아들이 생을 잃은 자리에는 역사책을 써 가슴에 품은 이들도 있었듯 무거운 무의식 구석엔가 꽃씨가 있을 줄로, 그렇게 생각하려 하여요. 어디에 있건, 그곳이 개척돼 이런 비를 만나 다시 꽃이 필지, 아니면 넝쿨째 수확으로 올지는 그 시간을 기다려 봐야 할 테죠.

밖에서 다시 끼익 끼익 소리가 들립니다. 가로등은 빨갛게 깜빡이고 방금 고양이가 잽싸게 지나간 것 같군요. 괜히 감상적으로 됐다 다시 나는 바깥을 보며 고양이를 찾아보려 해요. 빗소리는 참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