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끼익

고양이가 우는 줄 알았어요. 바람에 세차게 부는데 밖에서 끼익 끼익 소리가 나서, 조금 걱정이 돼 밖을 보니 마포구에서 걸어둔 태극기가 앞뒤로 펄럭거리는 소리더군요. 고양이가 울더라도 내가 뭐 해줄 게 있나요. 넌 어떤 일이니, 무슨 사연이니. 또 어떤 일로, 발정이 났거나 어떤 이가 던진 돌멩이에 맞은 이유인지 궁금해서 라도 하려 했지 뭐에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고양이도 돌멩이도 없고 내 눈길만 남았어요.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찬 날이네요.

비는 열을 식히고 오른 가슴을 내리고 긴장된 관자놀이를 한숨 쉬게 하는 군요.

지나간 계절은 결국 잊힐 겁니다, 추운 날 온기도 더운 날 시원한 손도,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미소, 뜨거운 숨결로. 그게 다음 사랑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래도 낡아가는 머리와 나빠지는 눈, 무뎌지는 성감대, 익숙해져가는 사회화에 기대 나는 언젠가 내가 나였던 날도 잊겠죠. 턱이 무척 떨려 부끄러워 하며 맞추던 입도, 당신을 향해 돌진하던 내 급행열차도 모두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갈 테여요. 당신 뺨에서 나던 살구나 복숭아 향기는 사실 즐겨 쓰던 에센스에서 비롯됐단 기억까지 그다음 연애나 그 전 만난 그이와 헷갈리는 때가 생길 겁니다.

그럼 저는 다시 무척 고통스러워할 거예요. 되게 울 거에요. 또 들리지 않는 고양이 소리를 찾을 겁니다. 구름 속에 흘러가는 해를 찾듯 모래밭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뛰어다닐 것이고, 이불 속에 동굴을 파 크게 소리가 울리듯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감정의 출구를 찾아가겠죠.

그렇지만 실록은 불에 타도 어디엔가 깊은 고요에 남아있고, 신의 아들이 생을 잃은 자리에는 역사책을 써 가슴에 품은 이들도 있었듯 무거운 무의식 구석엔가 꽃씨가 있을 줄로, 그렇게 생각하려 하여요. 어디에 있건, 그곳이 개척돼 이런 비를 만나 다시 꽃이 필지, 아니면 넝쿨째 수확으로 올지는 그 시간을 기다려 봐야 할 테죠.

밖에서 다시 끼익 끼익 소리가 들립니다. 가로등은 빨갛게 깜빡이고 방금 고양이가 잽싸게 지나간 것 같군요. 괜히 감상적으로 됐다 다시 나는 바깥을 보며 고양이를 찾아보려 해요. 빗소리는 참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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