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과 사람들은 함께 비를 맞았다.

전봉준이 종각역 앞에 등장했다. 종각역 앞에는 여러 건물이 있다 사라졌고, 지금은 중국에 적을 둔 한 은행이 있다. 그자리는 또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한 전봉준이 서울로 끌려와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된 곳이다.

그 동상을 사실 나는 어제 먼저 만났다. 오전 취재를 마치고 A부장과 점심식사를 위해 회사로 오던 중 청계 5가의 물난리를 이미 추가로 보고 전한 뒤다. 약속에 조금 늦었지만 종로1가에 등장한 기중기는 퍽이나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어서 발길을 멈췄다.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비닐에, 다시 천에 쌓인 어떤 물건은 트럭 뒤에 실려있다 크게 들려 미리 설치돼 있던 화강암 위로 얹어졌다. 아이러니하게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를 들어 옮길 때 포장의 무게중심이 목 뒤에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교수형하는 것처럼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옆으로 뒤로 다시 앞으로. 힘을 쓰는 이들은 대부분 나이든 노년의 남성, 거기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있었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물기 가득한 재단 위에서 세게 발을 굴렀다.

어느정도 위치가 갖춰지고, 드디어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강렬한 눈빛의 그가 종로사거리에 나타났다.

보자마자 전봉준인 것을 알았다. 머리 위로 질끈 묶은듯한 모양과 눈빛, 그리고 입술.

중앙에서 설치를 총지휘하던 이는 내가 연신 사진을 찍자 자랑스레 “전봉준 장군입니다. 내일 개막할 건데 처음으로 보는 손님이네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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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전봉준은 오늘 다시 흰 천에 싸였다가 만인에게 모습을 보였다. 많은 정치인과 종교인 등은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손을 쓰다듬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사진으로.

그들도 왔을까. 비를 맞으며 위치를 잡고 멀리서 흐뭇하게 쳐다보던 이들, 조심스럽게 그를 들어 옮겼던 기중기의 남자까지.

전봉준은 1894년, 수백 명의 동학교도를 이끌고 만석보를 파괴하고 고부 관아를 공격했다. 이는 조병갑이 모친상을 당하고 부조금으로 2000냥을 거둬오라는 요구, 만석보라는 이름의 저수지를 백성들의 노동력을 동원해 건설하고 그 사용료도 백성들에게 강제로 징수하는 등 농민에 해가 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전봉준은 수탈에 앞장섰던 아전들을 처단하고 불법으로 징수한 세곡을 탈취하여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종鐘이 달렸다.

심경深更이 중천을 넘을 때 겨우 달이 구름에서 나왔다. 바람부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구름을 민거다. 구름은 물에서 왔다. 두근두근 또 보글보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그가 겨우 하늘에 뜬거다.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었다. 오래 등을 댈 데도 없었다. 정처없다가 외롭다가 그럴 바에 모두 잊고 자유로이 노닐겠다 마음 먹었는데 그는 다시 바람에 휘청인거다. 그렇게 물의 후신은 바람과 팔짱끼고 옆동네로 이주 당했다.

그러는 동안 겨우 입을, 아니 면面을 뗀 이가 달이다. 달은 바람이나 물, 안개나 구름보다는 주체성이 낫대도 그 역시 중력에 의한다. 오히려 달의 소원은 완벽한 종속에 기울거나 불완전할지라도 스스로 날아가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말이다.

여럿이 고민만 기울이고 또 가끔 심장을 조이는 동안 달에 구름에, 비와 안개에 조용하던 종이 그제서야 떨린다. 종은 본래 유한히 맞으며 사는 녀석일텐데 도무지 이 종鐘은 다른 종種인지 그저 스산한 소리만 가끔 내고 있다. 묵직한 것도, 당목撞木이 낡거나 없어진 것도 아니다. 아, 그래 치는 이가 없구나. 손때가 잔뜩 있어야 할 나무의 이음과 걸개와 맞닿는 부분도 유려하기만 한, 사실 관상용 아닌가 싶을 정도의 그.

종이 달렸다. 어둠 속에서 간간히 보이고 대낮엔 볼 필요 없어 묵혀만 두고 있는 종이, 그 마음의 종이.

어제보다 슬픈 오늘

지하철이 떠나네요. 당신 마음이 저기 담겼죠. 감사했어요. 함께 달려주셔서. 페달질 아니면 따라갈 수 없는 이견을 잡기 위해 맨다리로 맨발로 우리가 함께 땀 흘리던 분초를 잊지 못할 거에요.

사람은 저마다 달라요. 몸과 건강, 유전자 같은 것은 너무 당연해서 뒤로 빼두더라도 생각과 마음은 같거나 비슷한 듯해도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르기도 하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똑같아도 결과는 전혀 알 수 없게 튀기도 하니까요.

나는 번지점프를 해본 적 없어요. 당신도 마라톤을 해본 적 없댔죠. 너무 달랐대도 우리는 어느 언덕에 만나 능선을 따라 걸었고 움막을 나누기도 했죠. 설탕도 소금, 게다가 술까지 필요 없던 날짜들 그게 쌓이다 보니 우린 자꾸 달려야 했죠. 조바심 나서, 지쳐서 허덕거리는 숨에 눈물과 땀, 침이 흐르지 않았다면 거짓일 거예요.

삶이 파도처럼 치니까, 파도는 만난 적 없는 달에게 자기를 맡길 줄 아니까, 우리가 사는 몇 시간 동안 결국 다른 버스 정류장, 다른 지하철역, 다른 신호등을 만나더라도 세상에서 함께 뒹굴 테니까.

다음 지하철은 오지 않았어요. 당신이 탄 그 열차가 이번 역을 지나는 마지막 열차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기 있어요. 우두커니 또 조용하게 숨 쉬면서.

따르릉, 사람의 신호가 울린다.

기사를 쓰고 겨우 한숨을 돌리면 얼마 지나지않아 전화벨이 울린다. 데스크나 캡, 아니면 당직을 서는 선배일 것이다. 기사가 내손을 떠난 후 20분 내외, 손가락이 춤추듯 키보드를 더듬고 때리던 찰나보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꾸중이나 팩트체크, 틀린 맞춤법이나 회사에서 정한 표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사실 이야기를 나눈다 표현했지만 듣는 쪽에 있는 입장에서는 그것은 외압 아니, 꾸중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완곡에 완곡을 더해 ‘계몽’ 정도로 타협하자. 그래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의 문을 통과하면 기사는 비로소 대중과 만난다. 하루하루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반성문을 쓰는 이들은 사실 그가 더 무서워야 한다. 안다. 그렇지만 거기에 큰 의미를 짙게 쓰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 확인이 완료됐고, 깐깐한 선배의 눈을 채웠다면 충분하다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닥칠 기사를 처리해야 해서, 아니면 피곤해서, 또 여러가지 의미로 ‘내놓은 자식’을 우린 잊곤 한다.

하지만 때로 대중은 선배나 데스크, 국장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아니, 사실 내가 잴 수 없을 만큼이겠지. ‘기레기’나 그보다 더한 단어를 쓸 때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를 차치하고서라도 관점을 넓혀주고 이면을 더듬게 하는 말은 기자가 되고자 준비하며 소위 ‘기자 사회’로 불리는 울타리 혹은 집단에 있게 되는 수많은 장벽보다 넓기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많은 눈에 감사하고 또 고개 숙인다.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위로할 수 있고, 높고 거친 어쩔 수 없는 절망의 벽이라고 느낄 때 힘껏 짖을 수 있는 그런 그런 길로, 멀고먼 지평선을 보고 가자.

새로운 곳에서 벌써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생각보다 여러가지 일을 했다.

질문아, 미안해. 그런데

질문은 서럽다. 사람의 혀에서 돋아 입으로 터지는, 생각의 고리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기도 한다. 부드러운 건 부드럽게 절제된 상황 속에서 이뤄지는 것일뿐, 교육되지 않고 방목된 궁금을 툭툭 허공에 날리는 게, 물론 자연스러운 것일지라도 반대편에 앉은 게 벽이 아니고 소나무가 아닐 때면 우린 끊임 없이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질문을 향해 나아가자. 제대로 된 궁금으로 다가가자. 밀림과 암흑에서 바람불고 가시비雨가 내리더라도,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중간에 낀 질문이 힘들어 하더라도, 서러워 울먹거리며 그에게 가더라도 그렇게 필요한 곳을 찾아 송곳질하자, 못질하자, 우리.

란(蘭)이 돈다.

자리와 자리 사이에 향이 난다. 오래된 사람의 자리가 하나씩 치워지고 또 닦인다. 어느덧 그 시기가 도래한 거다. 사람과 사람이 바뀌고 돌고 또 엉덩이 붙일 반의 반 평이 춤을 추는 거다. 란(蘭)이 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숨겨왔던 이야기나 숨길 이야기를 만든다. 욕망이 담기기도 했다가 다시 아쉬움으로 한숨 뱉는 일이 섞인다. 분자의 재구성은 때로 증기처럼 달아올랐다 얼음처럼 긴장된다. 고등학교 때 대학을 1지망, 2지망, 3지망 넣듯 아니, 사실 초등학교 배정을 위해 1지망, 2지망, 3지망을 넣듯 갈리고 움직이는 인사의 만사는 서른을 훌쩍넘긴 이 시기까지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칠할이 운이라 누가 말했던가. 사실 운이라 총칭되는 것은 프로스트가 가지 않았던 모든 길의 총합 아니었던가.

데스크나 부장이 될수록 그 갈림길은 좁아진다. 때로 어떤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할 때 바깥의 사람들은 영전이나 승천, 우천이란 말로 그를 축하하기도 한다. 그럼 그 부서에서 밀려난 이는, 낙천이나 낙향으로 불러야 하는지 때로 궁금했다. 오르막길을 열심히 간다는 건 근면과 노력이 합쳐진 영예일테지만, 딛는 땅은 반의반 평으로 좁아지고 동료는 사라지고 책임이 늘어나는 일. 많은 생각이 든다, 당장 진급 걱정 필요 없는 ‘일개 평기자’ 주제에.

첫 사회생활의 회란(回蘭)을 기억한다. 편집국장이란 자리가 바뀌자 한시간 내외로 100여 개의 난초가 편집국 복도를 뒤덮었다. 사무 직원은 하나라도 잊을까 열심히 목록을 정리했다. 그들에게 새 국장은 어떤 의미길래 이런저런 수식어가 함께 이곳을 식물의 고향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눈 앞에 펼쳐진, 석 달 안에 바스러질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식물들의 화사에, 안타까움만 더하는 내 모습은 알 수 있었다. 신호이자 문자로 남을 란은 왜 그런 운명의 길을 걷게 된걸까. 하루가 지나면 200개 가량 쌓였던 난. 그중 편집국장실에 들어서 목숨을 부지하게 됐던 녀석은 겨우 둘셋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 비해 지금 있는 회사는 녀석들의 목숨에 그나마 너그러운 편이다. 이곳저곳에 놓인 식물을 위해 플로리스트가 1주일에 한두 번씩 와 물을 주고 분을 간다. 이쯤만 되도 회사에 존경이 약간 생기려 하는 것이다, 그중에 절반이 1년 안에 말라간다 하더라도.

또 란이 돌 거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타의에 의해 받을지 모른다. 그래도 잊지 말 것은 그것들을 욕망의 증표로 남겨서는 안된다는 것. 죽음의 상품으로 기록해서는 안된다는 것. 또 그 속뜻을 기어이 파헤쳐봐야 한다는 것.

신문과 방송 4월호 ‘패럴림픽 취재기’

무거운 돌 하나를 굴린다. 얼음판 위로 미끄러져 갈 길이 정해진 돌 하나가 멀고 긴 여정을 떠난다. 과녁 중심에 닿으려다 다른 돌에 맞아 휘기도 하고, 실수로 엄한 곳에 서기도 한다. 손에서 떠난 돌 하나는, 그러나 결국 전 국민 유행어 ‘영미’를 남기고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은메달을 남겼다. 감동의 대서사시를 선물한 대한민국 여자 컬링 국가대표 ‘팀 킴’은 스피드 스케이팅 김동성 선수의 ‘분노의 질주’ 이후 대한민국 동계 종목 역사상 최대 유행어를 남겼다.

 

언론사에 있어 자원은 기자다. 기자 한 명을 굴릴 인건비와 노트북 그 이상 크게 들어가는 건 없기에 기자를 어디에 배치하느냐 하는 것은 언론사의 사론 및 언론의 사명과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 때문에 현장에서 본,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기자 상주 숫자 차이가 이를 대변하고 있었다.

 

패럴림픽을 취재했던 이들은 그만큼 큰 감동과 보도에 대한 고뇌를 이어왔으리라 본다. 이 고민이, 이 충격이 당장 시청률이나 PV(Page View, 기사 조회수)에 집착해 1점 내는데 그치지 않고 긴 시간 숙고 끝에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롱가드런백(컬링 용어로 앞의 스톤을 때려 뒤에 있는 스톤을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이 되길 바라본다. 기자들의 패럴림픽 취재와 보도 고민, 무한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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