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蘭)이 돈다.

자리와 자리 사이에 향이 난다. 오래된 사람의 자리가 하나씩 치워지고 또 닦인다. 어느덧 그 시기가 도래한 거다. 사람과 사람이 바뀌고 돌고 또 엉덩이 붙일 반의 반 평이 춤을 추는 거다. 란(蘭)이 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숨겨왔던 이야기나 숨길 이야기를 만든다. 욕망이 담기기도 했다가 다시 아쉬움으로 한숨 뱉는 일이 섞인다. 분자의 재구성은 때로 증기처럼 달아올랐다 얼음처럼 긴장된다. 고등학교 때 대학을 1지망, 2지망, 3지망 넣듯 아니, 사실 초등학교 배정을 위해 1지망, 2지망, 3지망을 넣듯 갈리고 움직이는 인사의 만사는 서른을 훌쩍넘긴 이 시기까지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칠할이 운이라 누가 말했던가. 사실 운이라 총칭되는 것은 프로스트가 가지 않았던 모든 길의 총합 아니었던가.

데스크나 부장이 될수록 그 갈림길은 좁아진다. 때로 어떤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할 때 바깥의 사람들은 영전이나 승천, 우천이란 말로 그를 축하하기도 한다. 그럼 그 부서에서 밀려난 이는, 낙천이나 낙향으로 불러야 하는지 때로 궁금했다. 오르막길을 열심히 간다는 건 근면과 노력이 합쳐진 영예일테지만, 딛는 땅은 반의반 평으로 좁아지고 동료는 사라지고 책임이 늘어나는 일. 많은 생각이 든다, 당장 진급 걱정 필요 없는 ‘일개 평기자’ 주제에.

첫 사회생활의 회란(回蘭)을 기억한다. 편집국장이란 자리가 바뀌자 한시간 내외로 100여 개의 난초가 편집국 복도를 뒤덮었다. 사무 직원은 하나라도 잊을까 열심히 목록을 정리했다. 그들에게 새 국장은 어떤 의미길래 이런저런 수식어가 함께 이곳을 식물의 고향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눈 앞에 펼쳐진, 석 달 안에 바스러질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식물들의 화사에, 안타까움만 더하는 내 모습은 알 수 있었다. 신호이자 문자로 남을 란은 왜 그런 운명의 길을 걷게 된걸까. 하루가 지나면 200개 가량 쌓였던 난. 그중 편집국장실에 들어서 목숨을 부지하게 됐던 녀석은 겨우 둘셋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 비해 지금 있는 회사는 녀석들의 목숨에 그나마 너그러운 편이다. 이곳저곳에 놓인 식물을 위해 플로리스트가 1주일에 한두 번씩 와 물을 주고 분을 간다. 이쯤만 되도 회사에 존경이 약간 생기려 하는 것이다, 그중에 절반이 1년 안에 말라간다 하더라도.

또 란이 돌 거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타의에 의해 받을지 모른다. 그래도 잊지 말 것은 그것들을 욕망의 증표로 남겨서는 안된다는 것. 죽음의 상품으로 기록해서는 안된다는 것. 또 그 속뜻을 기어이 파헤쳐봐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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