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사람의 신호가 울린다.

기사를 쓰고 겨우 한숨을 돌리면 얼마 지나지않아 전화벨이 울린다. 데스크나 캡, 아니면 당직을 서는 선배일 것이다. 기사가 내손을 떠난 후 20분 내외, 손가락이 춤추듯 키보드를 더듬고 때리던 찰나보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꾸중이나 팩트체크, 틀린 맞춤법이나 회사에서 정한 표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사실 이야기를 나눈다 표현했지만 듣는 쪽에 있는 입장에서는 그것은 외압 아니, 꾸중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완곡에 완곡을 더해 ‘계몽’ 정도로 타협하자. 그래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의 문을 통과하면 기사는 비로소 대중과 만난다. 하루하루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반성문을 쓰는 이들은 사실 그가 더 무서워야 한다. 안다. 그렇지만 거기에 큰 의미를 짙게 쓰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 확인이 완료됐고, 깐깐한 선배의 눈을 채웠다면 충분하다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닥칠 기사를 처리해야 해서, 아니면 피곤해서, 또 여러가지 의미로 ‘내놓은 자식’을 우린 잊곤 한다.

하지만 때로 대중은 선배나 데스크, 국장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아니, 사실 내가 잴 수 없을 만큼이겠지. ‘기레기’나 그보다 더한 단어를 쓸 때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를 차치하고서라도 관점을 넓혀주고 이면을 더듬게 하는 말은 기자가 되고자 준비하며 소위 ‘기자 사회’로 불리는 울타리 혹은 집단에 있게 되는 수많은 장벽보다 넓기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많은 눈에 감사하고 또 고개 숙인다.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위로할 수 있고, 높고 거친 어쩔 수 없는 절망의 벽이라고 느낄 때 힘껏 짖을 수 있는 그런 그런 길로, 멀고먼 지평선을 보고 가자.

새로운 곳에서 벌써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생각보다 여러가지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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