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에게 배운 사랑

여전히 바람이 불고 꿀냄새가 나는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바람은 텁텁하거나 아직 조금 답답해서 그런지 사랑은 오지 않았다. 사람도 그러했다.

꿀을 산 적 있다. 꿀은 단 맛 그 이상의 깊이를 내게 준다. 아플 때,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 마시는 꿀물, 채소와 함께 먹는 꿀의 맛은 전혀 다르고 느낌 또한 그렇다. 벌은 온갖 무덤을 다니며 꽃의 생을 퍼 나른다. 먹이가 있으니 완전 갈취는 아니래도, 어쨌거나 우리가 꽃과 벌에게 부채負債로 얻는 맛은 신身과 영英의 신비를 담고 있다.

부모님을 제외한 사람들과 큰 선물을 주고 받지 않는다. 단체, 이를테면 런클럽이나 대학 시절 소위대외활동으로 만난 사람들의 모임 등에는 값있는 물건이나 재화를 기부하기도 하지만 특정 개인을 지정해 선물을 주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다.

그런 내가 사람에게 꿀을 선물한 적 있었다. 시장에 들러 할아버지한테 아카시아꿀과 밤꿀, 유채꿀 등 설명을 듣고 고심해서 한병을 샀다. 무거운 그걸 낑낑대며 들고 찾아가 무거워보인다는 그에게 들려 보내고서 조금은 뿌듯하다고 생각했지만 그후로 오히려 그와 멀어지고 지금은 생면부지의 관계가 됐다. 그에겐 그게 생경한 일이었나 보다. 아니면 그에게는 그저 한 병의 꿀이라 생각 됐을지도 모를 테니까.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게 마음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처음 나를 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어떤 마음을 써도 결국 그건 내 선의 일이구나, 감정이 닿는 것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은 별개의 것이구나, 하는 것들. 사람의 마음은 나의 노력으로,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구나 하는 그런 것. ‘내 노력 따위로 바뀔 것이라면 애초에 그 노력조차 필요 없는 것이구나.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써 보았자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생각해보니 본능 또한 그렇잖아.

상처 줄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고, 상처받지 않으려 애쓴다. 노력해서 사랑을 쟁취해내는 그런 순간은 만들지 말자. 결국 텁텁한 이 공기를 뚫고 내 순간도 언젠가 올 테니까,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 어떤 황홀한 편지도 필요없이, 그때는 바람이 불고 꿀냄새가 날 것이야. 열대야를 뚫고 오는 바람은 텁텁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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