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사랑

비가 이따금 왔다 불현듯 그쳤다 우리 비를 맞았다 우산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머리로 귀로 광대로 턱으로 맞았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면 비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우리는 보기보다 비를 맞았다 눈을 감아도 느낄 수 있을 테지 우리는 소리가 아닌 시선이 아닌 있는 자체로 비를 알았다 비가 시간이었고 비가 장소였다 너는 비가 아니고 나도 아니니 우리는 무엇인지 한참이나 고민하며 같은 길을 걸었다 웅덩이에 얼굴 비치지 아니했고 서로 모습 평하지 아니하며 시간과 자리의 숲을 헤맸다 어둠을 만졌고 밝은 빛을 누비었다 눈을 뜨면 다시 네가 있고 다시 눈을 뜨면 네가 있고 다시 눈을 뜨면 네가 있던 시간이 쌓이고 비가 물이 아닌 것이 되는 시간이 쌓여 우리는 강으로 바다로 고향으로 또 오래된 고장으로, 그리하여 사랑은 이따금 왔다 불현듯 갔다 어느 먼 나라의 나무에서 꽃이 다시 필 것이다 그 꽃은 시간과 공간을 툭툭 털어내고 꽃잎을 내밀 거다 공기와 시간을 세게 밀고 세계로 나설 거다 다시 용기를 내는 것이다

‘배’차 신神과 하루, 르포를 내며.

번호판이 노란 차는 택시가 유일한가 싶었는데, 그날따라 눈여겨 보니 물류장 속칭 ‘서브’와 ‘허브’에서 나오는 차는 번호판이 모두 노란색에 용도기호가 ‘배’였다. 몰랐을 때 보이지 않던 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백수십의 ‘배’가 일순간 도로를 가득 메웠다. ‘배’차가 사회로 흘러 들었다.

나올 때는 같아도 도는 곳은 서로 달랐다. 겹칠 수 없었다. 철저한 지역할당과 담당자가 책임져야 하는 백업없는 ‘지역 마크’는 완벽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가능했다. 짐을 싣고 다시 무인택배함 사이즈와 택배 개수에 따라 분류, 집앞 배송을 원하는 물건을 다시 꺼내고 공간보다 큰 상자는 관리소장이나 경비원과 ‘정치’도 필요하다.

그날 ‘배’ 차 뒷문은 닫히지 않았다. 내가 본 차에 한정된 것인지 물었지만 그는 “거의 대부분이다”고 짧게 말했다. 수초를 단축시키면 수분이 되고 쌓이면 수시간이 될거다. 그렇게 만든 날로 그가 하고 싶던 게 있을까. 아니면 편의에 의해서였을까. 말 마디에 쌓인 어떤 그리움, 아쉬움, 그것들이 대답을 다시 짓게 만들었다. 차에는 한장 사진이 걸리지 않았지만 센 바람이 ‘배’차 유리에 걸린 그 마음을 밀어붙였다.

분초는 종합예술처럼 쌓였다. 등과 허리, 목과 머리에 다시 무릎에 정강이까지, 쓰이지 않는 근육이란 없었다. 626호로 배송된 물건은 사실 828호에 닿아야 할 상품, 잘못 쓴 주소까지 고쳐넣고 나면 그는 마치 작은 신神같았다. 이것은 서울이란 이랑을 걷는 신의 놀이라기 보다 신의 일상같은 업, 그에게는 주말도 없었다. “토요일 띄운 물건이 왜 오지 않았냐”며, 그는 일요일에는 신이라기 보다 부처같았다, 해탈과 평화를 품은.

아침은 6시쯤 시작하고 밤은 12시쯤 닫힌다. 그에게는 딸이 있었다. 신神은 딸을 그리워 했다. 그 딸의 사진은 그의 프로필 사진이었고, 아빠를 한참이나 좋아할 나이였다. 그 신은 사실 인간이었다. 보통의 삶을, 품안에 넣고 다니고 싶은 자녀를 가진, 저녁 식사를 오손도손 즐겁게 하고 싶은 보통의 사람.

겨우 하루, 신이자 인간이며 조정자이고 또 생의 운전자인 그를 짧은 시간 관찰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사실 단상이다.

링크 : http://news1.kr/articles/?331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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