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박상규 기자의 ‘합리적 의심, 보편적 상식을 의심하라’

살인범이 있다. 범죄심리분석관이 나와 살인범의 심리에 나와서 이야기했다. 사람이 프로파일링으로, 범죄심리분석가라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건이 벌어진 지 하루도 되지 않았고, 사건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도 나오지 않았고, 여자를 만나지도 않았는데 범죄심리를 말할 수 있느낙. 최소한 전문가라고 하면 면담을 하던가, 면담할 수 없으면 사건 기록이라도 살펴본 후에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수십만명이 본 TV에서 이를 말할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김광석 자살 역시, 팬들과 가족은 “김광석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보통의 가족들은 내 식구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모르는 것이다. 서해순시를 살인범처럼 몰아갔던 것, 인격 살인한 것이다.

정보를 가장한 폭력, 누구든 오해하고 오해받을 수 있는데 그게 살인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큰일 아닌가. 주의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사건을 보도하다 보면, 큰 사건이다 보면 흥분하게 된다. 언론인들이 사실확인 안된 상태에서 증폭되기도 한다. 지엽적 문제가 크게 확대되기도 한다. 살인, 사건, 사고 보도할 때는, 모든 것은 속보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살인범의 얼굴 공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살인범 인권도 보장해야 하는가. 인권을 보장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살인범이 예뻐서 나온 게 아니다. 진실에 접근하는 수단이다.

공권력에 사건을 맡기고 그것을 검증하는 게 기자의 역할 아닌가. 우리는 절대 경찰과 한편이 아니다. 경찰과 한편이라 생각하는 순간같이 오해에 빠질 수도 있다. 사건 보도하다 보면 그런 오해에 빠질 수 있다.

사건 수사를 해보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수사를 한다 하더라도 게임이 안 되는 게, 군대, 공무원, 경찰 순서로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조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수 대 일로 하는 것. 공평한 게임의 규칙을 ‘그나마’ 보장하는 게 힘의 균등함에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거기서 기자가 경찰 편을 들어버리면 거대한 인권 침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 검증할 수 있는 여력이, 기자들에게 사실 없다. 혈흔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 혈흔 얻기도 힘들다.

살인 사건은 보통 못 배운 사람이 저지른다. 그 사람들이 수사팀과 어떡해. 과학수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봐야 한다. 합리적 의심과 보편적 상식에 맞춰서 사건을 바라보자. 사실 굉장히 폭력적으로 적용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 M의 ‘똠방각하’를 찾아서

 언덕보다 낮은 건물, 푸르름보다 먼지가 많은 읍, 그도 그럴 것이 인근은 개발되지 않았거나 개발이 제한된 곳. 아니면 언젠가 개발이 되리라는 희망 끝에 욕심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밭들. 마을 주변에는 마을 사람들의 땅이 “그다지…”라며 얼버무리게 되는 도시. 구획마다 서너개 이상의 부동산이 있고 그곳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정권마다 앞자리가 바뀌고 있다.

그곳에서 수도의 철도는 선線을 바꾼다. 결코 쉽게 연결할 수 없는 길. 줄바꿈은 마치 장조가 단조로 바뀌듯 해서 그 곳부터 반대편 사람이 움직이는 지척咫尺은 빛이 다른 공기가 흩뿌려져 있는 것 같다. ‘단조의 선’을 탄 사람들은 노령의 부부나 홑몸, 아니면 외국인이나 취재진, 또 공무원. 도시 M의 사람들은 좀처럼 그 여객차를 타지 않았다. 어차피 넘지 못할 것이라며. 소원한지 수십년, 포기한지 십 수년, 다시 절망한지 몇 년인데 희망이 몇 개월치 들었다고 그 부채가 탕감되지 않을 것이라 하면서.

그러던 그 도시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해 부동산을 휩쓸고 다녔다 한다. 어떤 사람은 이름이 왕王같았다 한다. 그 왕과 왕의 식구들이 어느 죄를 왕왕 지었다는 것은 1년이 훌쩍 지나 전파와 포털 사이트 뉴스를 통해서라 했다. 도시에 와 흔적을 남기고 홀연 사라진 사람을 쫓기 위해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서울과 멀지 않지만 서울말과 ‘여기 말’은 분명 다르다 말해준 할머니는 “거 참, 괜찮게 보이는 청년들이 얼굴이 반쯤 울상이 돼 전화기를 붙들고 왕王만 찾다 떠나더라. 그런 사람은 부동산에 가도 쉽게 못찾아”랬다.

알음알음이랬다.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아닌 그 할머니는 “나도 집 있어. 원하면 보여주고. 평당 20만원에 대지랑 두칸짜리 방 포함한 집해서 1억원, 아니 9500만원에 줄게.”랬다. 거래는 어떻게 하냐 하니 방법이 있단다.

다른 회사에서 봉지 커피를 한잔 마시며 “그런 사람들이 ‘똠방각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방, 무슨 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나와도 부동산으로 쉽게 잡을 수 없는 빈 구획이 있다, 토지 등기부 등본을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그런 자투리. 조각보도 이으면 큰 이불이 되듯이 그런 땅을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 종이를 주고 받으며 부동산을 조각보 삼는 이들은 모처에도 흔적이 없었다. 등산가다 차 한잔 얻어먹으러 오듯 와서 몇개를 묻고 또 제안하고 사라진다는 사람들.

적籍의 기대와 다르게 나는 수일을 도시 M에서 투자하면서 ‘똠방각하’를 만날 수 없었다. 참새 발자국 같은 사람들, 디아스포라Diaspora.

아마 나는 또다시 도시 M에 갈 것이다. 만날 수 없는 ‘똠방각하’를 부를 것이다. 그 날이 오면, 그 순간이 찰나나 탄지彈指만큼이라도 온다면 꼭 묻고 싶다. 당신이 정말 왕王의 사람들을 만났냐고. 적어도 당신이 만난 그 왕王이나 왕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털어놨는지, 어떤 제안을 했는지.

도시 M의 짧고 단편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