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아직 뛰지도 날지도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왔다. 아침, 아니 새벽부터 꾸준히 내렸다. 오래전 제주도에서 들은 적 있는 소리가 창밖을 만져서 선잠에 깼다.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는, 갈매기가 거닐던 숲 첫 어깨에서 보거나 들었던 소리 같은 자국. 아, 까마귀가 모래를 긁는 소리다.

오래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간 적 있다. 한류가 오기 전 관광지였던 제주에서 우린 바위 앞에서 사진을 또 물과 중력이 만나는 자리에서 영상을, 돼지가 낮은 돌담 안에 갇힌 곳에서 도장을 담았다. 그리고 대망의 등산의 날, 아침을 먹자마자 오른 버스는 산신령이라도 찾으러 가는 듯 안개 바다를 건넛 산 입구에 우리를 뱉어냈다.

여전히 안개가 가득한 아침 우리는, 미처 술맛을 알기도 전이었던 나이의 친구와 나는 그 공기를 허푸허푸 마시면서 배낭을 멨고 해가 바다와 섬 사이로 고개만 겨우 내밀 즈음 그 안개를 다 마셔버리곤 표지판 앞에 섰다. ‘오름’의 시작이었다.

거기서 우린 까마귀를 봤다. 검은 옷에 검은 눈 검은 울음을 가진 산의 지킴이. 곳곳에 ‘음식을 주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봤고, 우리는 “우리 먹을 것도 없다”며, 사실은 무서워서였을 테다, 녀석들에게 달려갔지만 쉰 마리도 넘어 보이는 그 치들은 스파르타의 군대마냥 꿈쩍도 하지 않고 나무와 모래밭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

그때 처음 까마귀도 뜀박질한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옆 나무는 키가 작았고, 날아서도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그 척장을 녀석은 뛰듯 날아 가볍게 차지했다. 물론 그 광경도 신기했거니와 소리는 그 후로도 잊을 수 없는 특이한 것이었는데, 발톱으로 돌을 긁는 소리보다는 나지막했고 동물이 흙을 박차고 나가는 것보다 둔탁했다. 굵은 눈물을 모아 바닥에 세차게 던진다면 그런 소리가 났을까.

오늘 그런 소리에 깼다. 오늘 그런 추억에 들었다. 오늘 그런 시간에 아침나절을 보냈다.

새로운 출입처는 사실 다른 지역 소위 ‘라인’보다 내게 심정적으로 가까운 곳이다. 관악구 대학동에 38만원을 내며 하숙했고, 500동과 58동, 16동은 공부 또 우정과 시간을 보낸 길이다. 출입부처는 또 어떠한가. 아예 학부가 그 전공에다 ‘MB의 남자’ 중 한 명이 이름을 댄 포럼에 회장까지 했다. 그러나 하루 동안 이 모든 곳을 돌며 비를 맞은 것은, 다시 처음이다.

갑작스레 맞이한 새 밭에서, 나는 어떤 일을 쥐어 뿌릴 수 있을까. 잊히지 않을 그런 소리를 남길 수 있을까.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까마귀는 아직 뛰지도 날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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