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따라지 인생·위건부두를 읽고

2012년, 저는 3달 사이 서울 내 주거에 대한 많은 것을 겪었습니다. 인턴 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에 집을 얻으려다, 그 기간이 불분명해 들어간 구석은 3.3㎡가 될까 말까하는 좁은 ‘리빙텔’이었습니다. 말이 ‘사는 호텔 Living Hotel’이지 사실 무척 좁은 고시원이었던 그곳은 창문 없는 방 38만원, 창문 있는 방 40만원짜리 삶들의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아예 이름이 고시원으로 붙은 곳에서도 딱 1달 살아봤지만, 서울의 고시원은 이름으로 사기치고 또 창문을 코와 바꾸는, 코를 베는 것처럼, 곳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해 가을이었습니다.

처음 1달 반을 창문 없는 방에서 살았습니다. 정신이 나가버리겠더군요. 일하는 곳은 언론사에, 깔끔한 세미정장을 입고 다니는데 집은 닭장같은 곳이니 내외간 충격은 물론, 바다를 보며 살던 사람이 창문도 없으니, 감옥보다 더하다 싶어서 텔레비전을 보며 이력서를 끄적이고, 그 돈마저 아끼려고 라면과 밥만 먹어 살이 오르는 날이었지요. 그러다 결국 창문 있는 방으로 옮겼습니다.

어차피 손바닥만한 창이었지만 그 창이 생기니 이 내 가슴에 창이 난듯 속이 뻥 뚫리더군요. 그러면서 오히려 답답한 방을 겪었던 것이 감사하더군요. 좋은 것을 먼저 겪거나, 창문 없는 방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아니 지금 생각하면 ‘리빙텔’이 고시원보다 못하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또 그저 듣기만 했던 사람은 그것이 과장인지 아니면 왜곡인지 알 겨를이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언론의 길을 가려 생각했던 어린시절 신문이 떠오릅니다. 패기 넘치는, 당시 수습기자였던 저의 많은 선배는 무척 험하거나 고된 삶을 체험으로 풀어내 르포르타주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편의점이나 공장에서의 일을 경험한 것과 시체 영안소의 기록도 본 게 떠오릅니다. 그래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글은 서울역 노숙자로 살아가며 나눈 대화였습니다. 어떤 언론사 어떤 기자의 체험과 기록이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푼 이야기여서 더 강렬한 섬광이 남은 것 같습니다.

겪지 않고, 옆에서 단어를 주워서 쓴 글과 실제 체험이 들어간 글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오웰의 ‘따라지 이야기’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에릭 블레어, 오웰이 실제 겪고 쓴 글로, 읽자마자 힘을 느꼈습니다. 강하게 감동을 했습니다. 물론 굳이 끼운 ‘비판적 참견’도 내놓을 수 있겠지만요.

우선 인물 묘사가 탁월합니다. 대화에서 나타나는 내용, ‘위건 부두 가는 길’(위건부두)의 탄광 노동자의 대화나 모습에서 나타나는 특색을 잘 묘사했고,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따라지 인생)의 여관 주인, 함께 떠도는 이들과 구두수선공, 미장이, 석공, 잡역부, 학생, 매춘부, 넝마주이의 모습은 (물론 민족이 달라 완벽히 묘사되지 않지만) 눈에 생생할 정도입니다. 또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 지역적 특징을 설명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나라 남·북부도 여행하거나 최근 유행하는 ‘한 도시 한 달 살기’를 하면 이 정도 묘사하며 특징을 잡아낼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위건부두의 석탄 채굴 후 나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따라지 인생의 대규모 숙소 이야기는 세밀하게 설명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웰의 이런 묘사에는 2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우선 뒤로 갈수록 묘사 횟수나 설명이 점점 약해지고 횟수도 줄어든다는 겁니다. 특히 따라지인생의 후반부 인물들은 거의 설명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묘사를 독자 소구를 위해 쓰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사람에 대해 좀더 강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가 겪은 사람의 친밀도 차이가 그만큼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지곤 합니다.

우리의 ‘아주 위대한 지식인’ 오웰은 따라지 인생과 위건 부두를 쓰면서 현상 나열에 그치지 않습니다. 직접 인용하자면 “나는 노동계급을 충분히 관찰했기에 그들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집에 가면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위건부두 159p) 그는 글에 당대 사회적 현상 등을 함께 녹였습니다. 위건부두의 ‘전후 재건축’, ‘남북간 공업화 차이 및 발전상 차이와 비판’, 따라지인생의 “떠돌이들의 인력, 보건, 노동력 관련 문제 분석 및 해결책 제시가 여기 해당한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자의 ‘개입’은 기자가 어떤 글감을 땔감으로 선택 하느냐 부터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이 부분에서, 이를 ‘르포르타주’로 낸 오웰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를 집어넣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물론 더 궁금한 것은 책의 ‘타깃’입니다. 위건부두 기준, 노동자의 이야기와 섬세한 묘사에 맑시즘과 경제사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어떤 대중에게 위건의 상황을 전달 혹은 이야기하려던 것일지요. 심지어 위건부두 2부에서 오웰은 (1부에서 그토록 탄광 노동자의 삶에 대해 두텁게 써두고선) 아예 대놓고 “나는 노동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며 따라지 인생 시작을 서술하기도 했지만 말이죠.

사실 그는 어쩌면 ‘비이성적인 인류’에 대해 사실 그가 겪은 일련의 고난과 (이 2가지 르포르타주를 완성하는데 체험한) 상황을 ‘사실 거의 다 피해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에 대한 지식인 수준의 해결책을 내놓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다른 책 ‘더 저널리스트’ 인용) 기자 혹의 지식인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럼 3가지의 질문을 남기고 저는 글을 맺겠습니다. 저널리스트가 르포르타주를 쓸 때, 르포르타주 완성을 위해 불가피한 개입은 당사자에게 영향을 줄텐데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요? 오웰이 지금 한국에 태어난다면 그는 어떤 르포르타주 주제를 택할 수 있을까요? 통상 언론은 해결책이나 견해를 나타낼 때 전문가의 입을 빌립니다. 당사자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학계의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에 대해 오웰은 자신이 직접 해결을 내놨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폭염에도, 고민이 잘 닫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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