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림의 일상을 절반으로 잘랐다

9일에 떠나 19일에 돌아오는 백림의 일상을 절반으로 잘랐다.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다시 끊는 수수료는 40만원 남짓. 연차 사용도 절반으로 덜어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앞뒤로 잃은 것을 생각하면 200만원 가까이 되지만, 아쉬워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그러면 끝이다.

여전히 한양, 비행기가 돌아올 때쯤이면 머리에서부터 붉은 빗질을 시작할 인왕산이 보이겠지. 저마다 각자 삶을 사는 우리. 새삼스럽게도 이 삶의 끝에서도 사람이나 사회, 우주나 사랑에 대해서 여전히 모를 것 같다. 요새는 그런 생각이 많다.

서점에 갈까요, 서가를 돌까요

서점에 갈까요, 서가를 돌까요. 전과부터 낱말 풀이까지, 피천득부터 황석영까지 오래된 순서대로 울음을 울까요. 시대마다 살았던 나(들)이 어떻게 바람에 기댔는지 어디서 하늘을 한참 바라봤는지, 신을 고쳐 신는 척 하면서 둥그런 것을 만들어 씨앗처럼 몰래 뿌렸는지, 오래된 고궁을 보고 가슴을 때리거나 중구 정동에서 차로 된 벽을 밀고 당겼는지. 살아 마땅한 날은 없다며, 하루씩 쌓은 종이는 왜 이리도 무거운지, 그것이 기둥이 돼 책 숲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왜 어른이 돼 쓸데없이 키스를 하다 알게 될까요. 입술에서 종이 자르는 냄새가 날까요. 키가 클 나이는 이제 먹을 수 없고 아빠한테서 할아버지 냄새가 나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납골당 앞에는 부처가 가부좌 튼 교회가 세워졌어요. 나이 먹어 깃털이 빠진 비둘기가 십자 위에 앉았다가 석고상이 됐어요. 먼데서 풍경 소리가 들리고 귀를 기울이니 파도소리가 뒤섞였죠. 삶은 왜 이렇게 뒤범벅이 될까요. 아랫집에서는 왜 신음이 날까요. 흐느끼며 움직이는 어깨가 지진이 됐는데 왜 우리 집은 홍수가 났나요.

자서전을 봤어요, 당신(들)이 쓰다가 찢어서 버린 것을 주워다 바느질 했어요. 책받침처럼 넙덕하고 들 수 없이 무겁고 커다란 책.

바람이 그걸 넘겨주죠. 저는 그저 가만히 서서 바람의 속도로 그걸 쳐다보고 있어요. 갈대처럼 조용히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