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암협회 유방암 환자 기부금 지원 동참

현재 이어지고 있는 ‘모티바 핑크 챌린지’에 지목을 받아 알아보던 중 의료회사 ‘모티바’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모티바사는 코스타리카 코욜경제자유구역에 의료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여성 유방 수술 보형물을 만드는 업체이다. 유럽의 CE 인증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또 고유식별코드를 통해 수술에 사용된 제품이 추적가능하게 설계됐다고 한다. 부작용이나 추가 수술에 대한 사후 대처가 가능하게 했다는 점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 상 총 2만3500여개의 ‘모티바 핑크 챌린지’ 해시태그 게시물이 올라왔고 페이스북은 전체 이용자를 표본집단으로 한 검색이 어려웠다. 어쨌거나 현재 확인 가능한 숫자로만 2억3000여만원의 기부금이 예치된 것에서 충분히 의미있을 것이다.

참고로 2015년 설립된 모티바코리아의 2017년 매출은 503억원이다. 2015년 설립연도 매출 346억여원에 비해 45% 성장했다. 유의미한 사회공헌과 함께, 모티바의 선전을 지켜보겠다.

다음 지목할 사람은 RUNSEOULOFFICIAL 13번 강예은, PD 출신 영화인 이다혜, 한국GM에 있는 만능 스포츠맨 연세대 언론대학원 이창원 학우이다. 응원의 메시지를 더한다.

발목에 바람이 드는 날, 막차에서

종鐘이 내려다 보이는 거리, 차가 흐르고 가슴과 발등, 양손에 못질 당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 지나간 오해, 돌이킬 수 없는 흐름, 이미 지운 고백, 끓고 있는 찻물과 눈처럼 내리는 플라타너스 잎사귀. 어떤 사람은 머리칼을 만지면서 또 어떤 이는 추억의 역사를 새기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 짙은 갈색 ‘다라이’에 미지근한 물을 얕게 채우고 내 발가락을 살포시 넣던 사람의 손, 주근깨 가득한 이십대. 십대에는 이모를 엎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소녀. 겨우 몇년 삶을 더 채우고서 남의 집에 앉아 철이 들고 주먹만한 애를 안고서 다시 돌아간 친정. 울면서 보채던 애를 달래려고 시킨 목욕, 온몸이 따뜻하게 젖고서야 조용해진 시장 골목 개화기 삼층 양옥집. 앓던 막내아들이 삼층을, 세를 내어 준 일층을 빼면 오롯이 단칸방같던 이층에 열댓명이 쳐다보던, 그제야 조용히 눈을 감은 아기. 고요한 계절의 노곤한 추억.

쉽게 지워질 추억, 오래 남을 헛된 자랑들, 맺지 못한 것은 사랑의 질문.

우리는 어떤 길을 걸으며, 몰래 남의 길만 눈에 담으면서.

옛 첫 추위가 기억나는 시월, 당신 사랑을 떠올리는 막차에서 쓴다.

백림의 길에서, 2편 1장 어떤 달리기는 분憤에 대한 도전

‘호수의 땅’ 수오미에서 백림에 발을 딛는 여정만큼이나 평화로운 순간이 있었을까. 사실 골인 지점의 쾌락보다 덜하겠지만 ‘포, 차 떼’고 생각하면 사실상 3박 5일 일정 중 심신의 평화가 유일한 때였다.

9월의 항공료를 7월에 냈다. 뮌헨으로 입국해 백림을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시를 가치는 일정은 동유럽의 낭만을 개척하는 쾌미를 얻고자 하는 작은 욕심이었다. 그러나 바쁜 일상을 탈출하고 얻으려 했던 그것은, 이미 휴가 결제까지 끝난 마당에 중간에 소속 부서의 변경으로 차질을 빚게 됐다.

사실 변경된 부서의 부장은 전에도 내가 모신 바 있는 어른이기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 어릴 때는”이나 “기자가 되서 말이야”같은 말을 뱉는 분도 아닌 탓에 소위 ‘쿨하’게 휴가를 떠나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사를 비롯해, 이어지는 명절까지 생각하면 1달 동안 5~10일 정도 밖에 근무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를 ‘완전히 새로’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부담스러웠고, 팀의 최선임으로 옮겨가는 자리인 만큼 무게감도 나를 누르고 있는 까닭에 일정은 반토막으로 축소했던 것이다.

수수료로 20여만원, 숙소를 취소하며 다시 5만원, 독일 국내선은 취소조차 안 돼서 수 만 원이 말 그대로 ‘공중에 붕 떴’고 다시 비행편을 알아봐야 할지 가까운 곳으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물가가 저렴한 인근 국가로 여행을 간다면 시차도 없을 뿐더러 풍요롭게 먹고 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짝 닷새의 독일행은 결정 직전까지 매분 매초 계속됐다.

물론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몸상태가 훨씬 큰 고려대상이었다. 마지막 마라톤을 뛴 뒤 10kg이 넘게 살이 찐 상태에, 멈추지 않았지만 15km 이상 중장거리를 뛴 것도 대회를 제외하고는 추억의 안갯속에 있던 터다. 사실상 연습없는 초심자의 몸상태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툭 튀어나온 배와 가슴, 햄처럼 둥그렇게 퍼진 다리, 근육 없는 몸. 때때로 6to9(cf. 9to6)로 일을 하는 삶 속 달리기는 분憤에 대한 도전일 뿐 어떤 회복도 위로도 기쁨도 감동도 되지 못했기에 도로에 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없었다. 기회도 없었고, ‘앞으로’는 더욱더 없었기에 나는 움츠렸던 과감을 주저없이 여기에 던졌다.

기쁨의 고민

출근과 퇴근을 사랑한다. 이 기억은 쉽게 잊힐 찰나들. 아침 첫 땀 냄새를 맡게 되는 지하철, 오래 부는 바람, 서서 아니면 앉아서 보는 매일 같지만 다른 풍경.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다가 들어서는 단단하고 삭막한 건물. 그리고 이제 머리로 의심과 의식으로 시작하는 어떤 시간들. 밥을 먹고 커피나 물을 마시는 시간까지 분초는 짜인 연극처럼 우리는 녹봉祿俸에 대한 가치를 쌓고 거둔다.

그러나 때로 그 기쁨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권력 관계에 종속된다. 이를테면 끊임없는 알람이나 멈추지 않는 진동, 아니면 남의 고통에 대한 희망. 우리는 어디까지 사람이었고 어떤 글과 사실에 감동을 팔아버린 것인가. 일과 삶은 사람에 의해 설계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 어떤 영악의 굴레를 우리는 사는 것인지. 오래된 이들의 글을 뒤지다 깊게 숨을 쉬었다.

오래전 부산의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서빙을 한 적 있다. 하루에 연회나 포럼, 결혼식이 몇 건 있든지 오만 팔천원을 줬고 너무 뻔한 반복의 일상이라 쉽게 돈을 벌 것 같아 지원한 일에도 정치와 경제, 산업과 종교가 돌아갔다. 지방의 대학을 다니다 일당 받는 일상이 행복해 학교를 그만두고 아예 이 업계로 뛰어들었다는 ‘캡틴'(Captain)은 “모든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며 “무례한 손님과 다툼도 게임처럼 다루라”고 말했는데, 오늘따라 그의 그 말이 생각난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던 그의 담뱃갑에는 ‘클라우드 나인'(Cloud nine)이 적어져 있었는데. 오, 단테여. 오, 단테여.

어떤 가을의 밤, 어떤 삶을 기록하다가 짧게 써본다.

지구는 돌고 계속되는 우주 비행. 우리는 어느 별로 가고 있을까, 삶이여.

감사의 감사

사전에 한정 하더라도 우리는 가치에 최소 세가지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선 사람. 또 관계. 그리고 경중, 즉 중요도. 말 그대로 ‘무법의 영역’을 알처럼 깨고 있는 상태에서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조명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무리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회사에 폐를 끼칠 수도 없을 뿐더러 많은 사람에게 부담이 되긴 더욱 싫은 마음을 쌓아 오늘 이렇게 펼쳤습니다.

어떤 방향에서, 여전히 우리를 편향적으로 싫어하거나 몇 단어로 치부해버리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 압니다. 열정 아니면 욕심이라는 사람의 숲, 그 사이를 고고한 학처럼만 살 수도 없고 입을 닫아도 머무를 듯한 악어새처럼 있기도 싫지만 오늘은 진정을 담아 이 길을 하나 또 텄습니다. 트려고 했습니다.

밤이 어두워져 가고, 우리는 내일 또 하나씩 보고 불을 피울 겁니다.

저를 기억 하시겠습니까.

강남대로에 바람이 부네요

오래된, 아직 흔적이 있고 체온이 남은 이야기를 꺼내볼까요. 아니, 하지 말까요. 좋은 계절에 낙엽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당신 기다리는 조각들 덮고 기워 원래 있던 것처럼 눈물 또르르 내릴 시간이라 적을까요. 아니면 강남대로 가운데 서 있는 지금 이시간, 어떤 것도 후회한 적 없다고 크게 외쳐 볼까요.

사랑할 수 있게 생기지 않아서 미안했어요. 그런 핀잔에 마음 편하게, 시쳇말로 ‘쿨하게’ 넘길 채신머리 없어서 미안하고 미안하여요. 키가 크고 단단해서 품을 내어주거나 크게 안아줄만 하지 못해 미안하여요. 당신이 생각하던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당신이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녀서.

윤중로에 벚꽃이 필 거예요, 오늘은 시월 십구일. 가을 바람을 봄이라 속은 벚나무들이 꽃잎을 내어줄 거예요. 흩날리는 녀석들을 한 움큼 쥐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미신을 믿을 거예요. 옆에서 갈대가 부스럭 거리면, 그것은 그냥 흔한 연날리기 소리나 마실 나온 가족이 우리 상황을 엿보는 키득거림이라고 짐작할 테여요.

그러면 당신을 볼 수 있을까요. 가짜 바람으로 진짜 가슴이 뛸까요. 길에 앉아 먼 산을 바라봤어요. 저기 붉게 불 붙고 있는 것은 단풍인가요, 아니면 진달래일까요.

강남대로에 바람이 부네요. 마음이 펄럭거려요.

백림의 길에서, 1편 2장 길은 때로 도전이 됐다

답답할 때면 달리기를 했다. 2012년부터 뛰었다. 온천천을 뛰었다. 다리 위로는 1호선이 달렸다. 대개 내가 닿는 곳은 동래역,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광안리까지도 갔다. 회가 올라간 접시나 맥주 몇 캔을 들고 모래를 밟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도 크게 소리를 지르고 49번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렇게 가던 복귀는 어느 순간 버스 탑승용 후불교통카드가 필요 없을 지경이 됐다. 울분에서 시작된 뜀박질이 숨과 다리로 내려온 것.

굳이 빠를 필요도 없었고, 멀리 갈 필요 없었던 길은 때로 도전이 됐다.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됐던 것이다. 거기에는 운동 용품을 만들어 파는 아디다스, 나이키, 뉴발란스 등 회사의 마케팅 행위가 주효했다. 트레이닝 런은 실은 트레이닝과 함께 신제품을 선보이는 온갖 종류의 대화가 들어 있었다. 물론 그게 싫은 것은, 당시에도 지금도 결코 아니다. 이건 자유로운 의지 아래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교환행위니까. 그러나 때로 대회와 연계한 신기술 채택 제품의 출시는 왜 그렇게도 기가 막혔던 것인지. 시즌별 밀어대는 물건의 이야기, 소위 ‘스토리텔링’은 인제 와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수준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리기를 이어갔던 것은 ‘가장 정직한 운동’이라는 오래된 표어기 때문이었다. 모든 말과 상황은 수시로 바뀐다. ‘덜 정직한 운동’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느끼는 수준을 넓게 잡자면 달리기는 ‘가장 평화로운 운동’이었다. 사실, 그래. 당첨부터 9월 중순까지 150여일 동안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