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에 바람이 드는 날, 막차에서

종鐘이 내려다 보이는 거리, 차가 흐르고 가슴과 발등, 양손에 못질 당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 지나간 오해, 돌이킬 수 없는 흐름, 이미 지운 고백, 끓고 있는 찻물과 눈처럼 내리는 플라타너스 잎사귀. 어떤 사람은 머리칼을 만지면서 또 어떤 이는 추억의 역사를 새기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 짙은 갈색 ‘다라이’에 미지근한 물을 얕게 채우고 내 발가락을 살포시 넣던 사람의 손, 주근깨 가득한 이십대. 십대에는 이모를 엎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소녀. 겨우 몇년 삶을 더 채우고서 남의 집에 앉아 철이 들고 주먹만한 애를 안고서 다시 돌아간 친정. 울면서 보채던 애를 달래려고 시킨 목욕, 온몸이 따뜻하게 젖고서야 조용해진 시장 골목 개화기 삼층 양옥집. 앓던 막내아들이 삼층을, 세를 내어 준 일층을 빼면 오롯이 단칸방같던 이층에 열댓명이 쳐다보던, 그제야 조용히 눈을 감은 아기. 고요한 계절의 노곤한 추억.

쉽게 지워질 추억, 오래 남을 헛된 자랑들, 맺지 못한 것은 사랑의 질문.

우리는 어떤 길을 걸으며, 몰래 남의 길만 눈에 담으면서.

옛 첫 추위가 기억나는 시월, 당신 사랑을 떠올리는 막차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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