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쌓인, 어제의 눈

쉬운 글로, 얇은 글씨로 쓰겠다. 금방 읽고 쉽게 잊혀지며, 강물이나 눈물로도 흥건히 번져서 결국 누구도 알아볼 수 없도록.

어제 쌓인 눈은 그저께부터 내렸다. 한없이 생을 재건하는 물의 역사다. 우주는 아닐 것이다, 저게 온 곳은. 외롭게도 섬이나 먼 바다, 오래된 호수 또 산꼭대기를 돌고 돌다 가로수 옆에 닿은 것이다. 고향도 본적도, 부모나 선생도 없이 투명한 빛으로 와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흰빛을 얻었다가 이제 조금씩 검은색을 머금고 우두커니 쌓일 수 밖에 없는, 창피가 가득한 거룩하지 않은 계보.

가까운 곁의 네온사인이 빛을 바꾼다. 새빨간 또 샛노란 다시 새파란, 네온이 먹은 화약들이 가게 머리에 달려서 빛을 바꾸니까 눈도 색을 입다가 시간을 삼키고 오히려 녹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회사 아니면 삶의 공간마다 아직 쌓여있는 눈의 엉덩이들이 흥건하게 젖어가는 게, 어쩌면 오래된 저항을 기록한 땀의 자국인가, 아니면 눈물자국인가. 우리는 얼마나 우리를 쉽게 바꿔가면서 행복의 값을 흥정하는가.

시간에게는 잠이 없고, 나는 어떤 골목에서 불면증과 교제를 시작했다. 삶이 내 뺨을 후려갈겨서, 이렇게 차가운 기운이 닿는가. 태어나서 한번도 맞아본 적 없는 따귀가 일기에 오롯이 적혔다.

이 삶의 이 순간은 얼만큼 사실인가.

세상에는 악인이 있고, 나는 오늘 행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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