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성喪性을 생각하다

어스름해진 틈에 어수룩한 사람의 눈동자를 본다. 숨이 막힐 듯 아찔한 순간들이 필름이 세게 감겼다가 풀리듯 지나가면서 매초를 때린다. 사람은 쉽게도 만났다 헤어지고, 때렸다 안아주며, 그리워했다가 미워하기를 반복하는가. 당신의 이름은 어느 녘에다 조심히 적어둬야 하는가.

어느날 나는 노루의 뒤를 밟고 있었다. 고락산 잔등을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올랐다 내리는 하얀 눈, 평생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고개 돌리면서 나를 확인하던 녀석의, 퇴화해 더는 냄새를 맡지 못하면서도 콧잔등을 계속 옴작거리던 청명의 짐승을, 나는 엄마 뒤에서 산을 오르며 가만히 쳐다보던 것이다. 조금씩 발을 비비며 움직이는 것에도 심각한 고난이 생기거나 크디큰 지진이 난 것처럼 감전되던 그. 바람개비처럼 도는 초침의 물레를 넘어 그 맑은 가슴은 다시 바람의 고향으로 날아 올랐다. 이제 오히려 놀란 것은 나와 엄마였고, 냄새도 향기도 남지 않았다.

사실 그녀석은 나나 엄마나, 그나 그녀, 그리고 우리였다. 우리는 여기저기에 그렇게 머물렀다. 누구도 꾸짖지 않는 땅에서 무명의 압박에 혼이 나 채이고 흔들려 불안만 더하는 생령生靈들. 우리는 떨었고 우리는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는 지나쳤다.

오래전 그 노루가 기억에 꼿꼿이 남는 까닭은 최근 마주친 많은 벗과 남과 타자들 때문이다. 늙고 오염돼 이제 정치와 임의의 공포가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노촌奴村의 식구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거뭇한 기색을 낙인으로 찍어주는데 내 얼굴이 검댕 인지 제 얼굴이 분간 못하는 지경에 종착終着한 까닭이다.

내 눈도 떨고 있었다. 시간은 흔들리고 휘면서도, 이렇게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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