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여전히 흐리고, 박하고, 어려워

여기는 여전히 흐리고, 박하고, 어려워.

내 눈이 흐린 줄 알았는데 사실 먼지 때문이었다. 바로 앞 골목 어귀에, 사람이 돌면서 물안개가 흐트러지듯이 흔적이 남은 게 환시幻視로 느껴졌다. 너는 없는데, 네 흔적이 있었다. 이른 오전의 소로小路였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젊은 사람이 벌써 폐구閉口에 다가서는 것만큼 외로운 것도 없다지만 너들이 사라진 순간부터 나는 말을 아꼈다. 외로움도 아쉬움도 따뜻한 웃음까지 여전히 둥그런 골목의 곡선을 넘나들지 못하고 있다. 탁 던지면 퉁 하고 돌아오는 것처럼 말의 운동에, 나는 연이어 아팠고 기억했던 것이다.

말은 씨앗이라서 가까운 골목에서부터 씨앗을 내려 밭이 됐고, 능청스럽게 빨리 자란 언어의 산물들은 울창한 가림막이 됐다. 연남로3길 골목은 둥지가 됐다. 잘 다듬어져서 편안한 흐름이 아니더라도 온기 정도는 머물던 땅.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공기와 햇볕이 서로 껴안을 만 한 터, 거기에 지금 유령이 흐르고 있다.

삶은 너무 박해서, 온전한 이들을 제값으로 쳐주지 않았다. 마음은 매매가 안 돼서 월세나 전세만 전전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울음을 처음 터트릴 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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