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을 때

설거지 중 흘러내리는 소매가 뻔뻔하게 물을 머금어도 고무장갑을 뺄 수 없을 때. 야근있는 날 쓰레기 내놓을 것을 깜빡할 때. 혼자 먹기에는 많고 둘이 먹기에는 많은 요리를 시키고서 허겁지겁 입 안으로 그걸 밀어 넣을 때. 스스로 열린 문으로 먼지바람이 들어와도 온통 젖은 알몸으로 뛰어가 닫을 수 없을 때. 청소기를 쓸 때 무거운 짐을 홀로 들어 옮기고 닦고 쓸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 쓰던 글이 엎어져서 아쉬움만 가득하거나 상을 받아서 행복할 때. 어떤 사람이나 사고의 추모식을 가서 혼자 무릎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을 때.

오멸汚衊의 창窓을 보다가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한다. 이미 사라진 것일까 싶어서 눈을 구겨서 긴장을 해보면 여전히 저 멀리 있는, 흔적처럼 굳은 사람의 마음.

벽에 난 구멍에는 누가 정하지 않은 방향으로도 쉽게 바람이 오가는데, 마음에 난 창으로는 왜 그을린 연기만 내 속을 업감연기業感緣起 하는가. 떠나지 않던가.

속이 쉽게 탄다.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곁에 그림자가 왔다가 사라졌다. 가까운 날의 일이다.

사람의 선을 믿으면서, 그걸 먹으면서 자랐는데 너무 쉽게 신실信實을 내어 비추고 있는가. 요새 간혹 거울을 보면서 울 때면, 오만방자한 이의 초상이 움직이고 있어서 고민이다.

없는 생각을 쓰고 그보다 짙게 지우개질을 한다. 여전히 창은 흐리지만 나는 멀리서 오는 소리에 귀기울인다. 우리는 어떻게든 삶을 사니까. 사랑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