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놀라운 성취를 바라보다가

재개발 투쟁을 벌이는 낡고 후미진, 상습 침수지역의 반지하 방값이 쌀까, 아니면 산 정상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고바위에 있는 집 삯이 낮을까. 어떤 사람도 쉽게 답할 수 없어서 찾아볼 때면 그마저도 가격이 쉽지 않아 놀랄 때가 있다. 가지지도 못할 서울 하늘이 아래라 그런 적도 있었고 바로 옆이 느닷없이 주민센터부지로 선정되면서, 골목 아래에서 하늘을 보고 굴뚝 위에서 야경을 보던 사람들은 옆으로 옆으로 옮겨갔다.

집의 이름은 자꾸 변했다. 고시원보다 좁은 한 평 반, 세련된 말로 사 점 구 제곱미터 공간은 고시’텔’이 됐고 어떤 방 한 칸, 속칭 ‘원룸’은 부동산 등기에는 고시원이 돼 취사를 할 수 없어서 단속이 뜨면 가스레인지나 전기레인지, 속칭 ‘인덕션’을 서랍 아래로 가려야 했다. 공인중개업소들은 그런 집을 자기 옆집 아들에게 팔지 않았다. 안면이 없는 남에게만 웃으면서 그런 형편을 내밀었다. 어느 사람이 지독히 돈을 모으는 탓은 부모가 가진 집과 같이, 아주 좁아서 웅크리더라도 몸을 붙일 수 있는 욕조 한 개 놓고 싶어서였다. 그 남자의 스물 세 살 소원은 목욕탕 가서 돈을 내고 남에게 등의 때를 맡기는 것이었다.

그런 순간이 되면 그 치에게 더는 철학과 민주주의, 평화나 페미니즘, 심지어 부모나 남의 재산 따위까지도 자신의 삶에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들이 아니게 됐다. 시간제 노동, 아르바이트만 해도 백 수십만 원이 통장에 생기지 않느냐는 지지부진한 말을 늘어놓는 정치인에게의 투표도 별 게 아닌 아침이 열리는 것이다.

위로 가는 계단은 높은 사회에도 낮은 골목에도 있었다. 값이 나가는 서울 종로 북악산 자락의 어느 집과 서울 어느 구 어느 동의 산자락 달동네는 시계가 좋은 날 서로 마주볼 일 있을지 모르나 삶의 계단 앞에서는 달랐으니까, 다를테니까.

야자나무의 다른 이름인 종려나무는 한국의 남해나 제주도, 동남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일테지만, 그 나뭇가지가 황금으로 돼 있든지 은으로 돼 있든지 어떤 이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눈 앞에 종려 열매 모양의 빵이 있다면 좋아했을 테다.

어떤 사람의 놀라운 성취를 바라보다가 괜히 심술 궂게 오래된 희망을 꺼내 생각해봤다. 우리는 어떤 사회 속에서 각자의 냄새나 천성 아니면 교육에서 죽어가는가, 굳이 가보지 못한 제곱미터 당 수천만 원의 집에 거짓 복수심만 키우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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