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기의 한 해가 질 때

오랜시간 기다렸던 광경이 내게, 썩 기대해본 적 없는 시간이 깊이 머리를 묻을 때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인지 기억할 수 있을까.

헤어진다는 것은 우리 삶에 변하지 않는 명제. 끊어지고야 말 운명.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아픔. 그리고 뻔한 기쁨, 당연한 고민, 가끔씩 해일처럼 덮을 윤달의 고독. 그것이 사랑. 그게 별리別離, 순리와 지연, 어떤 선택의 중간. 사실 엔트로피의 증가. 관계의 적분.

우리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종교로 삼기로 했다. 하나에서 시작했으나 서로 다른 이름으로 꾸려진 불안의 공동체를 엮고 묶으니 쉬운 공식이 됐다.

집으로 가자, 결국 아름답게 석양 속으로 무너질.

‘그 자체’인 어떤 이의 동지

내 고향, 아름다운 물이 굽이굽이 있던 땅은 어떤 오해의 장소였다. 다른 사상이 휩쓸고 가면서 칼날이 부서져서 파편이 여기저기 튀던 도시, 조선과 고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은 반도에서 피고 컸으나 내가 자란 도시도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작은 반도였고 자연스레 맞닿도록 뚫린 길은 하나, 그 도로는 탈출구였고 숨구멍이었으며 또 분출구였다.

그러나 그 터의 사람들은 물길도 계단이나 왕로로 만드는 기술이 있었나 보다. 과거 수산업의 고장이던 땅은 어느 날부터 밀수로 양태가 자랐고 다시 화학산업을 먹고 물이 올랐으며, 오늘에 와서는 ‘어떤 밤바다’를 노래하는 청년으로 전혀 다른 관광의 이름표를 달게 됐다.

그 바다와 그 길에서 꾸역꾸역 들어온 소문은, 1990년대 어렸던 내게 쉽게 들어왔으니 어떤 사람에 대한 설화였다. 아주 어릴 적 누군가는 섬마을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됐다. 그 섬은 외지기로는 괜한 미움을 사 온 이 도에서도 한 손가락에 들 정도고, 그의 산전수전은 참으로 전설적이어서 앞으로도 그를 뚫고 나올 게 어려워진 그야말로 ‘고기준’이 됐다.

그러나 그가 이룬 성과는 동지들의 것이 집대성된 하나의 표상이었고, 우리는 최근 그와 50년을 함께 한 ‘어떤 동지’가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되짚어보면, 그의 ‘어떤 동지’는 ‘그의 어떤 동지’가 아니라 그 자체였다. 시대를 뚫고 편견을 박차고 선 하나의 정신이 있던 것이다.

사람은 그 자체로 어떤 정신이 될 수 있는가. 시대가 가면 어떤 것이든 변하고 닳을 텐데 그 정신은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어떻게 변모할 텐가.

어제 그가 이 땅에 안녕을 고하고 무로 떠나는 마당에서 두 번 고개를 기울였다.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장례란 어디에고 존재하는 것은 아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