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기 해부학, 감정흔

나는 심부를 절개하면서, 새 사랑이 떠나길 바랐다. 이 사랑은, 이미 질린다. 질겨서 잘리지 않은, 뜯어내야 하는 잔인한 계절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논리의 어깨 너머. 지금 쓰는 글자에 감정이 담기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감정을 도려내 저울 위에 올리는가. 저울에 올려 결국 실험실에 수치로 박제될, 나의 감정흔은 어떻게 설화가 돼 가는가. 이 세기가 지나가면 나는 오해를 탈피하는가. 문 앞에서 나는 울다 무릎을 꿇었다. 양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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