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SPACE를 두번 두드리는 동안

홀로 쓴 글에는 언제나 우주가 있다. 그것도 여러 개. 새 창을 목표를 두거나, 때때로 그것 없이도 내밀한 중심으로 들어가지만, 집宇과 집宙은 대다수의 엄지 곁에서 생으로 자랐다.

공간은 어떻게 우주가 돼 가는가. 우리는 결국 알지 못하고 각자도사各自圖死할테지만, 가슴 속에 품은 암흑물질 탓인가. 근심과 걱정, 기우로 우리는 종교의 땅과 번식의 본능, 측은지심을 세웠다. 타나토노트Thanatonautes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선을 위해 살고 있는가. 망상과 허구에서 탈출하고 있는가.

좋은 글은 쉽게 읽히고 이해시키는 문장들이라고 했으나, 미려하지 못하게 나찬아 그마저도 어렵다.

우주를 두번씩 두드리면서 꿈을 바이트로 담다가 결국 고민만 담고 말았다. 내일 해봐야겠다.

엄마에게는 부채가 있다

엄마에게는 부채가 있다. 그건 사실 엄마에 대한 것만 응축된 게 아니다. 내 첫사랑인 외할머니와, 대전 현충원에 계신 그의 짝에 대한 죄송이 뒤섞인 감정이다.

대학생 시절, 용돈에 몇 푼 더한 아르바이트 삯을 더해 연애를 꾸려가던 때가 있었다. 집에 다녀가려면 4만원이 필요해서, 어쩌면 그것은 핑계를 삼아가면서 그 돈을 청춘에 썼다. 후회할 필요 없이 아름다운 내 생이지만 그 중 하나의 때는 굳이 삭제하고만 싶은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뛰어갈 것을 그랬다. 피곤이나 사랑을 핑계로 다음 차를 타지 말 걸 그랬다. 그 앞 차를 탔으면 외할아버지 가시는 길에 큰 절을 드릴 수 있을 것이었으나 굳이 그 차, 밤 10시20분쯤 고속버스에 몸을 올리느라 나는 힘이 없는 외할아버지 손만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온기는 여전했으나 스스로 쓰다듬어주지 못한 팔을 빼앗아 잡고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뒤에서 허무하게 쳐다보다 자학했던 날에서 시간은 강산을 바꾸고 날아와 때때로 꿈 속에 앉았다.

내 고향 항구에는 노을이 긴 공원 아래 그때를 전후로 케이블카가 생겼고 그 위에서 바라본 종고산과 중앙동, 군자동 풍경 앞에서 내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시작이야 어떻게 됐건 그들에 의해 발현되었던 것인 셈이 됐다.

당신의 말 마디는 여기 이 글과 내가 틔운 온갖 육하원칙에 곳곳에 꿋꿋이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