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幻想痛

내 벽에는 한 장의 종이가 붙어있다. 위쪽만 고정해 둔 탓에 바람에 잘도 날려서 덜렁덜렁 존재를 알리는 종이에는 사건번호와 처분일자가 박혀있고, 내 양심도 몇 줄 걸려 있다.

아주 짧은 글에도 어떤 거짓이 없게 하려는 다짐은 때때로 남들에게 오해가 된다. 사실에 대한 물음은 관계의 왜곡을 부르기도 하고 거짓에 대한 질문은 전쟁의 첨병으로 되돌아 올 때도 있다. 그러나 챙겨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이 돼 가는 과정에서, 어제는 그제는 그끄제는 부끄럽게 살지 않았는지 여전히 되묻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운 적이, 다행히 아직 없었다. 부끄러웠다면 나는, 그랬다면 나는 부끄럽다는 말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괘씸한 새끼처럼 숨어 버렸을까.

타사의 어떤 후배가 내게 말했다, “칠 수 있을 때 치자”고. “이마저도 못하는 날이 올지, 어떻게 아느냐”고. 어떤 사실이나 답답한 상황에도 방어적으로, 섀우 복싱을 한 적 없는데, 나는. 그래도,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온 방식이 다르면서 때때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덜렁이는 결과를 보면서, 조금은 웃었다. 고마운 사람들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알까. 전세자금 이자 십 수만 원에도 벌벌 떠는, 속칭 ‘핫플레이스’라고 뜨는 동네에 살면서도 옥탑방이나 다를 바 없는 더위에 얼린 물병을 꼭 껴안고 자는. 도통 넉살이 없어서, 누가 사준 아이스 커피 한 잔, 오천 원 만 원 안팎 간식을 꼬박꼬박 기억하면서 되갚아야 성질이 풀리는. 후불교통비, 전기와 가스 요금을 내면서도 행복하다 생각하는, 그런.

피의 사건 종이를 보다가, 그래도 잘 지내왔다며 짧은 주말에 웃었다. 헛되이 살지 말자,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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