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어떤 친구를 알고 있다. 떠나고 도망가고, 피하고 젠체하는 사람 많은 세상에서 자기 입으로 ‘아닌 것은 아니다’, ‘불편하다’ 터는 사람. 특히 그게 속한 위치는 거기에 쉽지 않은 보수적인 곳이었는데 그는 그걸 다 털고 훌훌 떠났다. 당장은 모른다, 그게 얼마나 위대한 상처 하나였는지. 그렇지만 나는 알고, 내가 여태껏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은 청년 시절 이미 노후를 던진 결정이며 사람은 밥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방증의 목도인 탓이다.

이를테면 이상과 위법 사이에서 확신범 마냥 바늘, 송곳, 집 속의 톱처럼 카르텔을 뚫고 나가야만 하는 행동이다. 부모의 불안을 머리맡에 베야 하는 삶이다. 행동에 대한 생기와, 그 안의 연대가 꾸준하고 강력하지 않으면 지치거나 무너질 수 있는 위치다. 말 몇 마디, 상황 몇 개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나를 모른다. 아마 기억 속에서 불온한 양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를 알았고, 안다. 이익관계를 뜷고, 메타세쿼이아처럼 고개를 든 한 사람을.

향항香港홍콩 방향

아침 비행기는 서해 방향으로 날게 된다. 해가 지는 쪽의 섬, 홍콩에 착륙하게 될 것이다.

반송중대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홍콩 행정부는 범죄인 송환법을 철회했으나 복면금지법이라는 일종의 토끼몰이가 다시 시작했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사망, 쓰러진 기자까지.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난 사람들의 도발일까, 아니면 강대강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비대칭한 정보로 파편을 쪼개는 쪽일까.

이야기는 조립되는 것이고, 사실 파편의 어느 것이 현실의 저면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실 ‘왜 내가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없다. 그렇지만 삶은 해답을 찾기 위한, 사실 그 대답이 주관식인지 답이 하나인 객관식인지, 그도 아니라면 다지 선다형의 객관식인지,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라고 한다면 내 선택은 비행기에 오르는 바로 이것인 셈이다.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나는. 글이나 사진, 영상으로 남기려고 할 테지만 그것은 업무가 아닌 고민의 영역이 될 것이다. 물론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글을 써서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귀띔 정도 덧붙였으나 그게 쉬울까, 그 난리 바닥에서.

비행기표를 끊고 나서 수일 아팠고, 그 뒤로는 열심히 길을 익혔다. 지하철도 버스도 트램도 끊기거나 정차되곤 한다는 곳에 들어갔다가 나오곤 해야하니까. 옷과 장비도 이동과 상황 대처에 가장 알맞게 준비했다. 시뮬레이션까지 하고 가는 출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전히 남쪽 바닷가에 사는 엄마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사진과 영상, 글로 담기보다 눈과 마음에 담아라’는 것이나 나는 그 세 가지로 밥을 빌어먹는 일을 구했고 이제 그 다섯 가지 모두를 채우러 떠난다.

비행기는 서쪽 방향에 내려 앉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서쪽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와 연이어서 해가 뜬다는 징조일 것이다. 가자, 서서히 해가 뜰 섬으로.

조슈아 웡 비서장을 만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맞아요, 어머님

어머님, 이런 곳에서 뵙네요. 잘 지내셨죠? 요새도 뜨개질 잘 하시나요. 가을쯤부터 어머님께서 목도리를 뜨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두 개 길이를 비교해가면서, 아버님 목에 둘러보면서 아버님이 “이것 참 좋네”라고 말하시면 “따로 줄 사람 있으니까 얼른 내놓으라”고 말씀 하셨다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저도 사실은 무릎 담요를 사뒀어요. 앞마당에 느린 바람이 뺨과 팔뚝을 할퀼 때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을까, 언덕 넘어서는 해 뒤로 찾아오는 그리움이나 서른 해짜리 씁쓸함을 덮을 수 있을까 하고요. 오래전 이야기가 됐네요.

어디 가는 길이셨나요. 이 동네 쉽게 나올 일 없으시잖아요. 어머님이 좋아하던 음식을 파는 곳이 많은 지역도 아닐 뿐더러, 젊은 애들이 멋 부리면서 함부로 사진 찍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것보다는 고즈넉한 풍경 좋아하시는 것 알아요.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덕현아, 난 무거운 게 좋더라. 분위기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말이야. 너도 그렇게 지내라, 항상.” 이런 가볍고 흔한 골짜기라서, 괜히 쑥스러움이 돋아요.

저는, 그냥 버티면서 살고 있어요. 여전히요? 네, 제 목표는 그대로예요. 그래서 월급도 그럭저럭 시간도 이럭저럭, 생각도 이러쿵저러쿵. 난 게 없네요, 여전히.

어머님, 맞아요. 그렇게 됐어요. 노력해서 노력이 발하면 좋은데 그러지 못할 때도 많으니까요. 그게 사람이면 더 그렇죠. 제 일보다 어머님 생각이 먼저 났어요. 제가 너무 받기만 했죠, 마음이든 뭐든. 저희 엄마요? 네, 건강하세요. 아빠도.

저요? 살고 있어요. 살아가고 있어요.

멸렬의 시대, 연재를 끊어내면서

쓸데 없는 행동은 아니지만 쓸모있는 진로를 위해 이 연재의 길을 잘라내기로 했다. 어차피 볼 사람은 어떤 길이라도 오고 가는, 이미 난 길은 훼손하지 않으나 결이 맞지 않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같은 곳에 대한 지류를 떼어내는 것이다. 이건 어떤 결심도 절망도 아니다. 겨우 고안해낸, 어울리지 않는 위치와 방향을 정리하는 것이다. 모래톱에서 뽑아낸 바위를 산자락에 옮겨놓듯이 폐허가 된 고택에서 고송古松을 구해내는 그런, 그정도의 선택 다름 아니다.

짧은 해명을 더하자면 단상은 대부분 사건과 삶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지껄이기 싫어서 문단과 단락, 단어 사이에 나만 아는 의미를 무덤 속에 몰래 도둑 안장하듯이 흩뿌려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풀자면 내가 가본적도 없는 경북 군위에 대유해 글씨를 박은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온 편지’는 내가 인터뷰했던 사망한 어떤 정치인에 관한 발언과 내용을 녹여놨으며, 여의도의 노을과 함께 가슴에 박아둔 ‘이력서를 두 장에서 한장으로 자르면서’는 과거 어떤 연애가 내게 힐난했던 내 이기심과 욕심, 표현 격식에 대한 고통이 쓰였다. 삶의 대부분은 행복에서 왔다가 고뇌와 도전을 거쳐서 물의 방향과 별의 속도로 지나가는데 내 뜻을 굳이 타자의 곡해 속으로 우겨넣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육하원칙을 왜 싫어하겠는가, 내가. 몇가지 유형의 절삭기와 연마기, 피로와 단어의 더미를 쌓아놓고 자르는 일로 밥을 빌어먹는데. 그러나 이 계절보다 내 단어는 빠르고 생각은 보수적 계산기에 놓인 상태에서 이라도 하지 않으면 잠식은 의미보다 빠를 듯 해서 감정과 연장선을 여기서 끊어 버린다.

이 동네에는

이 동네에는 여전히 해가 높게 들지 않아서 서글픔이 아스팔트에 깔린다, 아프지 않게 조금씩 밀려간다. 내가 섰다 앉은 곳이 도로나 거리인 줄 알았는데 움직이는 벨트 위였다. 이 자락이 어디서 꺼질지, 나는 반대편에서도 어깨에 힘을 줘서 내가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말려 올라갈 때까지 기도할 수 있을까. 삶이 쉽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으나 이게 고난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 고개를 돌려서 골목과 담벼락을 보다가 이게 꿈이 아닌 것을 깨닫는다. 다리를 세우고 하늘로 다니는 지하地下철 아래에는 개울이나 나지가 있고, 그것은 삶을 가르지 못한다. 우리의 가격도 그걸 기준으로 번화가와 우범지대로 갈리지 않으며 여전히 우리는 불火웅덩이를 찾아서 사랑에 떠는데.

이 동네에는 네가 살고 있다. 이 구석에는 내 사랑이 있다.

양파 카레를 끓이는 법

대로 끝에 언덕이 있어요. 당신은 그 너머에 있죠. 당신은 있는지요. 다시 말해서, 당신은 부존재不存在가 아닐까요. 오래된 고민이에요. 상자 안에는 누구도 없지만, 누군가는 양이나 된장찌개, 편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울지도 끓지도 애절하지도 않은 틈바구니에서 나 홀로 기도하고 있을지요. 해넘이 없는 극점極點에서 나는 적도처럼 끓고 있지만, 그뿐이지요.

혜성인가요, 거기는. 규칙 있는 삶이라는 것은 부서진 잔해가 어디에나 마음대로 부유하는 틈에 감기는 규칙적으로 삶에 스미죠.

어제는 머리가 아팠어요, 두통이나 편두통이 아녔어요. 알게 됐지요, 시간의 폭을. 대로 끝 언덕 방향은 당신이 나타나는 쪽이 아니라는 사실은 감기 같은 우울감을 주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아요. 삶은 무작위는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