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렬의 시대, 연재를 끊어내면서

쓸데 없는 행동은 아니지만 쓸모있는 진로를 위해 이 연재의 길을 잘라내기로 했다. 어차피 볼 사람은 어떤 길이라도 오고 가는, 이미 난 길은 훼손하지 않으나 결이 맞지 않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같은 곳에 대한 지류를 떼어내는 것이다. 이건 어떤 결심도 절망도 아니다. 겨우 고안해낸, 어울리지 않는 위치와 방향을 정리하는 것이다. 모래톱에서 뽑아낸 바위를 산자락에 옮겨놓듯이 폐허가 된 고택에서 고송古松을 구해내는 그런, 그정도의 선택 다름 아니다.

짧은 해명을 더하자면 단상은 대부분 사건과 삶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지껄이기 싫어서 문단과 단락, 단어 사이에 나만 아는 의미를 무덤 속에 몰래 도둑 안장하듯이 흩뿌려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풀자면 내가 가본적도 없는 경북 군위에 대유해 글씨를 박은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온 편지’는 내가 인터뷰했던 사망한 어떤 정치인에 관한 발언과 내용을 녹여놨으며, 여의도의 노을과 함께 가슴에 박아둔 ‘이력서를 두 장에서 한장으로 자르면서’는 과거 어떤 연애가 내게 힐난했던 내 이기심과 욕심, 표현 격식에 대한 고통이 쓰였다. 삶의 대부분은 행복에서 왔다가 고뇌와 도전을 거쳐서 물의 방향과 별의 속도로 지나가는데 내 뜻을 굳이 타자의 곡해 속으로 우겨넣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육하원칙을 왜 싫어하겠는가, 내가. 몇가지 유형의 절삭기와 연마기, 피로와 단어의 더미를 쌓아놓고 자르는 일로 밥을 빌어먹는데. 그러나 이 계절보다 내 단어는 빠르고 생각은 보수적 계산기에 놓인 상태에서 이라도 하지 않으면 잠식은 의미보다 빠를 듯 해서 감정과 연장선을 여기서 끊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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