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어떤 친구를 알고 있다. 떠나고 도망가고, 피하고 젠체하는 사람 많은 세상에서 자기 입으로 ‘아닌 것은 아니다’, ‘불편하다’ 터는 사람. 특히 그게 속한 위치는 거기에 쉽지 않은 보수적인 곳이었는데 그는 그걸 다 털고 훌훌 떠났다. 당장은 모른다, 그게 얼마나 위대한 상처 하나였는지. 그렇지만 나는 알고, 내가 여태껏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은 청년 시절 이미 노후를 던진 결정이며 사람은 밥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방증의 목도인 탓이다.

이를테면 이상과 위법 사이에서 확신범 마냥 바늘, 송곳, 집 속의 톱처럼 카르텔을 뚫고 나가야만 하는 행동이다. 부모의 불안을 머리맡에 베야 하는 삶이다. 행동에 대한 생기와, 그 안의 연대가 꾸준하고 강력하지 않으면 지치거나 무너질 수 있는 위치다. 말 몇 마디, 상황 몇 개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나를 모른다. 아마 기억 속에서 불온한 양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를 알았고, 안다. 이익관계를 뜷고, 메타세쿼이아처럼 고개를 든 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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