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7

국회를 다녀왔다. 머리에 새하얗게 눈이 앉았다. 일기를 쓰듯이 카메라를 꺼내서 이 카메라의 최대 망원을 당겼다. 내가 원하던 각도, 폭, 깊이를 조절하다가 건곤감리가 최대한 뚜렷하게 박힌 순간을 낚았다. 가까운 순간은 최악이 된다, 어떤 이들은 제20대 국회를 이렇게 불렀다. 언젠가 이 최악도 또다른 최악으로 덮일 거다, 오래된 눈이 더 아래에 깔리듯이. 사람은 계속 실수를 하고 집단은 자꾸 넋을 놓고, 202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자꾸 고민을 하다가 간담회에 늦을까 봐 종종걸음을 옮겼다. 이 지붕을 나 홀로 담았다, 국회에서 셔터를 누르는 동료, 선배들을 대신해서. 때마침 울린 동료의 문자는 가슴에 알람을 울렸다, ‘이 사진을 잘 봤다’는.

20200214

과학자와 ‘과학정치가’는 다르고, 속도와 시간, 양손의 다른 악력은 무력을 깨운다. 세게는 여전히 위치마다 있고 돈은 물줄기처럼 금류金流로 간다. 시장은 잠들지 않아서, 상한가와 하한가 폭이 육십 퍼센티지인 것은 또다른 눈속임의 일종이다.

어떤 유령이 휩쓸고 있다, 세계를. 그건 지구에 하나의 점을 찍고 그 밖을 떼어내면 보이지 않는 환상과 다를 바 없다. 기표와 기의가 쓰리엠 접착제처럼 작용하듯 유령의 이름은 무섭지만 그건 나를 해칠 수 없다. 많은 학자는 그걸 고등학교의 입시나 대학의 ‘유령학’에서 어쩌면 배웠겠지만 그게 중요하겠는가. 굶어 죽는 사람은 있으나 아사餓死한 유령은 없으니.

팽창하는 지구는 수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의 죽음은 먼 북소리 나는 언덕 뒤편에 해악이 됐다. 그러나 그들은 안다. 아라비아 반도 너머 그리스나 스파르타라는 곳에는 눈이 세 개, 귀는 없으며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오멸汚衊의 족속이 산다는 것을. 그들은 달팽이를 삶고 거위 배를 가르며 또 도구를 천재적으로 쓴다는 것을.

그들은 몰약을 짓지 않는다, 쓰임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떤 종교는 20세기에도 천동설을 내세웠고 다른 방편으로 금의 제국을 키웠다. 그러나 약은 없었다. 그것이 인간, 체르노빌에서 녹아내린 것도 사람. “여기 사람이 있다”는 깃발은 반감기와 함께 지워졌다.

말하지 않은 것들에 진실이 있다고 해도, 누구도 이상하지 않은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오래된 정원에 사과나무를 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