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언론사에는 연차별로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나 보다. 혹은 단어 공장에서 작업반 하나만 ‘언론어’로 삼고, 부분집합이라 이름표 단 건가. 짧고 무거운 글은 언제나 사람을 흔들지만 그것은 편집자가 아니다. 우리 언론 대부분의 신병 글틀은 대부분 똑같다. 개중 몇은 폭발하는 문장을 모아서 곳간 깊은 곳에 아예 묻어 버린 듯 하다. 사실의 중요와 다르다. 모두 비슷한 단어집을 묶기 위해 발탁되고 발굴하는 것일까. 속 없이 쓴 자유에 억울한 소리를 듣고 한탄한 날, 나는 살 어느 부분을 찢긴 듯 했다. 스스로 도려낸 게 아닌 탓에 고통이 크다. 여전히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