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지 않게, 멀어지는 시감時感을 떼면서

긴 길에 있으면 이게 실제인지 과거인지 혹은 환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이 있을까. 또 어떤 게 현명하거나 논리적인가. 사실 그에 앞선 것은 이게 실제인지 가능성인지 혹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말인 ‘운명’運命인지를 아는 게 우선이며, 그보다 다시 한 발 나가자면 ‘나는 나인가’를 톺아 봐야 한다. 쓸모 없어 보이거나, 그런 시간은 생에서 무엇을 얼마나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되려 물어야 하는 ‘효율 낮은’ 생각이 가득 들어찰 때면 나는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달렸고, 헤엄쳤으며 그것들은 모두 짧은 길이었다, ‘긴 길’과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20세기의 소년들은 지쳤다. 낭만에 이기심을 넣었는데, 생각을 넣지 않고서 수금을 시작한 탓이다. 어떤 주의나 이즘ism같은 게 외려 어느 동네 어떤 정치적 성향, 예를 들어서 ‘강남 좌파’같은 수식어가 됐다. 물론 이를 예로 들었다고 해서 바깥에서 송곳이나 망치를 든 내가 동조나 반발을 표시하는 게 아니다. 생각과 삶의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 귀에 들렸다, 경복궁이나 육삼빌딩, 롯데월드타워나 개성 선죽교, 제주 숨비소리나 서편제같은 게 무너지는 그런. 20세기 소녀들은 지쳤다. 이기심은 우려에서 나왔으나 굽어진 등이 활처럼 펴질 일은 쉬이 없었다.

입버릇 같은 말은 ‘돈을 벌고 싶으면 불법이나 위법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비아냥이었다. 선한 눈의 미인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느 허공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지만, 그에게 맞아서 몸이 부서진 이는 정신은 깨어진 상태. 어떤 반성문은 재판정에 닿을 뿐, 피해자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대상이 없는 기도를 했다. 걱정이나 기우를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을 했다. 글씨를 남기는 것은 이제 누구나의 일이지만 뿌리에 고민이 없으면 전쟁은 언제나 시작됐다.

따뜻한 말싸움이 하고 싶어진 지 수 달이 지났으나 찬 나이 탓인지 쉽게 붙여지는 건 없었다. 건너편의 사람 역시 이런 고뇌가 척수에 찼을까, 알 길 없고 몰라도 ‘일 없’지만 노쇠에 의한 봉신封神은 싫었다. 그것은 이미 고등학교 때 버린 일이다.

사랑을 불청구不請求하면서, 결국 없던 일을 있게 만드는 데 열정을 놓으면서, 암약暗躍을 지연하게끔 소원하면서, 이 감기에 학을 뗐다. 몇 년에 걸친 열병이었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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