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어느 예술가가 별이 될 때, 나는 단어를 발랐다

이것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웃음이 맑던 누나는 주변에 웃음을 주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표정이 따뜻하고 생동감 있던 그는 내게 없던 발랄함이 있던 사람이지요. ‘깨발랄'(꽤 발랄)하던 당신은 무채색 속에 묻혀서 감정과 이성이 이격된 내게 그걸 이을 수 있는 다리에 주춧돌쯤은 깔아줬어요.

‘맑다’가 ‘맑았다’로 바뀌게 되었죠. 어떤 가을의 일입니다. 당신도 가지고 있던 밝음의 꼬리(그림자)가 어떤 방향으로 휘었는지, 일상에 파묻힌 내가 알지 못한 사이에 당신은 단풍처럼 농익었다가 낙엽처럼, 그렇게.

당신의 집 앞을 서성이다가, 다시 당신이 간 곳에 따라갔지요. 멀리서, 전광판에 뜬 얼굴을 봤지요. 웃음 예쁘던 사람의 눈은 멈춘 듯 있었죠. 타자의 마음을 넉넉하게 이해해주면서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듣던 그대 모습을 보던 게 기억나서 잠자코 멍하니 있다가 해야 할 일을 시작했어요.

따르릉 따르릉. 온통 전화의 알람이 울렸지만 굳이 집중하지 않은 것은 당신에게 쓰는 편지같은 ‘글의 일’에 한 톨 아쉬움 남기고 싶지 않아서요. 물론 알지요. 부족하고 모자란 내가, 당신 앞에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주고 싶어서 윤색(潤色)을 거듭해도 완벽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톺았지요. 누구라도 꾸짖거나 살피더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는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이런 마음도 어쩌면 당신에게서 배운 것이겠지요. 당신이 그랬지요. ‘화장을 못 해서 더 예뻐 보일수 없다는 것에 슬픔을 느끼기보다, 20대 개그맨이 분장을 못 해서 더 웃길 수 없다는 것에 슬픔을 느끼겠다’라는. 자존감의 어떤 면을 당신이 알려줬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살라고, 또 살자고.

어떤 슬픔은 파도처럼 우리를 때릴 때도 있지만, 밀물처럼 밀려와 한참이나 잠잖고 있거나, 많은 비나 짙은 안개 속에서 만(灣)처럼 채우기도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굳이 원하고 또 바라지 않겠지요. 그래서, 글을 발라내고 다시 바루었어요.

당신을 마주한 수사관(搜査官)이 알려준 것들은 덜어냈고, 그들의 표정도 떼어냈죠. 집 앞을 찾았지만 글엔 그게 다가구 주택인지 빌라인지, 아니면 아파트인지도 지웠어요. 속상하거나 사실에 대해 잘 모르는 이웃들의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도 덜어내고, 당신 사진 앞에서 외치는 말들, 그리고 어쩌면 어떤 면에서의 평판에 영향을 줄 사진도.

이것은 자기 검열이 아니지요. 당신이 내 입장에 서서도 그리하였을 것들을 하는 것.

웃음을 주면서 남을 깎지 않았던 당신을 처음 직접 만난 (음악 예능프로그램 ‘스케치북’ 방청을 하러 간) 2012년부터, 펜이나 마이크로 삶과 진실을 옮기는 업을 가지기 시작한 2013년 그 전부터 당신 보면서 알고 또 느끼고 또 영향받은 게, 이렇게.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내가 ‘전염되는 슬픔’을 옮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글을 깎았어요. 구박이나 지청구하는 목소리를 내가 듣더라도요

쉽게 울음 우는 사람이 쓰는 글에서 눈물 냄새 또 아쉬움을 긁어서 털어내니 규격보다 못하게 맞추어진, 덤덤한 단락 몇 개만 남았어요. 오천 자, 만 자 더 깁거나 밀어 넣는 것도 가능할 테지만 당신도 그걸 온전히 바란 게 아닐 테지요.

쓰고 난 글을 다시 돌아보니 이것은 사실 ‘육하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언론판’ 기본에는 멀어졌네요.

언제와 왜, 어떻게 같은 것을 어찌 쓰나요. 그것이 공익(公益)일까요? 몇 분 몇 시간 고민했지만 사전에 붙은 해(解)엔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고 붙어있어서 나는 혹을 뗐어요. 넘치지 않는 글이 때때로 더 큰 지향(志向)을 담겠죠.

당신을 쓰다가 나는 나를 돌아보았지요. 이것도 내가 받은 선물이네요.

괴물이 되는 것과 평소를 살아가는 것이 어떤 순간에는 찰나의 선택이라는데, 당신 다시 만날 때까지 이 모습으로 남아 있을게요. 적어도 노력한다는 것이라도 알아주세요. 이것은 스스로 읊조리는 당신 향한 노래. 또 다짐의 글.

희극인 박지선 씨의 명복을 빕니다.

2020년 한국기자협회 생명존중문화 확산 에세이 공모전 우수상

가상의 적, 어쩌면 가짜 벽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나 논리가 아닌 취향과 생활양식의 부분이 되는 경우를 꽤 봤다. 그냥 거리두고 싶어지는 것은, 그렇게 서글프지 않지만 판단된다는 다른 차원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들을 가름해 부르지 않고 ‘어떤 부류’로 통칭하는 것에서 나는 슬픔을 느꼈다.

우리는 충분히 살펴서 호불호를 분간하는가. 옳음과 그릇됨을 바루어서 순간을 평결하는가. 이를테면 젊은 시절 민주 투사로 세상을 바꾸는데 맨 앞에 섰던 사람의 음주운전, 위험운전치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회개한 반민족주의자가 국립대학에 기부한 수천억원은 어떻게 생각되는가. 또 시세를 임의로 조정해 소액주주의 자살을 부르고, 피눈물 나게 했던 이의 재 창업 재기는. 예들은 현실과 멀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지천에 있다. 어제 해명을 요구했던 사람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경하는 사람의 목록에 있었고, 사적으로 호쾌한 이는 실은 ‘호적에 붉은 줄’이 있는 이기도 하기에.

지극히 가까운 점에서 그러하다면 조금 먼 데 있는 상황은 쉽게 분별될까. 사장은, 시장은, 총리는, 대통령은 또 더 멀고도 먼 데서 머리 위 부모는. 오래 전 그런 이야기를 내게 조심스럽게 하면서 우는 이 낯을 본 적 있다, 내 부모가 어떠어떠한 혐의로 수감된 바 있는 전과자였다는.

우리는 쉽게 살고 있지만, 사실 꽤 복잡하게도 꼬인 실을 따라 앞으로 가고 있다. 벽장에 넣어두었던 낫을 보려고 문을 열었더니 사실 그 안에는 호미가 있었다. 장 뒤가 무너졌고, 내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