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적, 어쩌면 가짜 벽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나 논리가 아닌 취향과 생활양식의 부분이 되는 경우를 꽤 봤다. 그냥 거리두고 싶어지는 것은, 그렇게 서글프지 않지만 판단된다는 다른 차원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들을 가름해 부르지 않고 ‘어떤 부류’로 통칭하는 것에서 나는 슬픔을 느꼈다.

우리는 충분히 살펴서 호불호를 분간하는가. 옳음과 그릇됨을 바루어서 순간을 평결하는가. 이를테면 젊은 시절 민주 투사로 세상을 바꾸는데 맨 앞에 섰던 사람의 음주운전, 위험운전치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회개한 반민족주의자가 국립대학에 기부한 수천억원은 어떻게 생각되는가. 또 시세를 임의로 조정해 소액주주의 자살을 부르고, 피눈물 나게 했던 이의 재 창업 재기는. 예들은 현실과 멀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지천에 있다. 어제 해명을 요구했던 사람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경하는 사람의 목록에 있었고, 사적으로 호쾌한 이는 실은 ‘호적에 붉은 줄’이 있는 이기도 하기에.

지극히 가까운 점에서 그러하다면 조금 먼 데 있는 상황은 쉽게 분별될까. 사장은, 시장은, 총리는, 대통령은 또 더 멀고도 먼 데서 머리 위 부모는. 오래 전 그런 이야기를 내게 조심스럽게 하면서 우는 이 낯을 본 적 있다, 내 부모가 어떠어떠한 혐의로 수감된 바 있는 전과자였다는.

우리는 쉽게 살고 있지만, 사실 꽤 복잡하게도 꼬인 실을 따라 앞으로 가고 있다. 벽장에 넣어두었던 낫을 보려고 문을 열었더니 사실 그 안에는 호미가 있었다. 장 뒤가 무너졌고, 내 얼굴이 보였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