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겨우내 자랄 수 있던 이유는 재능 때문이 아녔다. 그것은 포기였다. 쉽게 말해 닿을 수 없는 이상을 염두에 두는 게 아니라, 어떤 담이나 천장을 알거나 보지 못해서, 기어코 아닌 묵묵히 뚫고 가는, 그것은 포기였다.

그 엄두가 나지를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있다. 어느 재개발 구역에 들어가 사실 누구에게 몇만 원씩 돌아가는지 모르는 십수만 원 깔세를 내고, 언덕에 어깨를 붙인 사람을 나는 본 적 있었다. 어떤 사람의 지옥이 또다른 이의 천국이나 연옥 사이쯤이 됐다가 결국 벽을 허물면서 뒤로 또 뒤로 밀려나는 벼랑을 나는 본 적 있다. 그 골목엔 다시 월급 몇십만 원짜리 사람이 의자를 깔고 앉아 있었다. ‘철거’ ‘개새끼들아’ ‘사람이 있다’를 써둔 골목 앞에서 “여기서 나가세요, 당장”을 외치는 사람 역시 집엘 가면 염치없게 어떤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그는 다시 연옥를 나눠서 몇 단계쯤에서 상한가와 하한가 사이를 저울질 했다.

밀어내는 게 환상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못 느낀 이들은 절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몇 년전 나는 벽이 좁아지는 꿈을 꿨다. 고향집 아파트가 부엌 분리형 원룸이 됐고, 부엌이 사라지면서 공동주택이 준주택으로 이름을 갈았으며, 설치된 가스레인지는 법령상 전기레인지(인덕션)으로 대체됐으며 결국엔 침대가 의자의 역을 대신 맡는 고시원으로 밀어졌다. 창문이 있는 방은 3만원이 비쌌지만, 사실 소용이 없는 것은 머리 위에 설치된 간이 옷걸이 기구, 이른바 ‘행거'(행어)가 빛을 차단하는 암막 역할을 함께 했기 때문에.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어떤 기차역이나 전철 사이 마련된 깔개 위까지 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쉽게 생각되지 않았다. 때로 그걸 알지 못해서 울었으나, 나의 연옥은 어디쯤에서 샛길이 날까 하는 고민 또한 깊어졌다. 왼쪽 눈에서 눈물이 맺히면 오른쪽 것은 건조증을 앓았다. 아팠다. 앓으면서 버틴다는 것은 편한 일이다. 육하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고 때로 곤란한 일이기 때문이다.

팔 것을 찾아야 했다. 교환이야말로 유일한, 또 감사한 그리고 거룩한 행위다. 밭을 갈지 못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렸고, 사냥을 하는 이는 소금이 필요했다. 시장과 은행이 진화하는 동안 나는 무얼했나. 겨우 단어를 모았다. 겁이 많아져 설까, 귀가 커졌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화가 많은 듯 편두통에 시달렸다. 어느 1980년대 봄에서부터 2010년대까지의 일이다. 묵묵히 재능을 길러갔다. 그것은 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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