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 태풍이 무섭다가, 어느 순간 편안해졌다. 쌓여있는 역사가 흐트러지는 게, 오래된 소요가 동동거리는 걸 불안에 젖어서 쳐다보다가, 먼바다의 고요에 젖었다. 우리는 단일폐곡선에 갇혀서 이월된 사랑을 먹었다. 마음만큼 크지 않은 접시 위에 올려야 하는 게 많아서 식탁보가 아쉬움으로 젖었다. 탁, 하고 릴테이프가 멈추고 무섭다가 편안해졌던 태풍의 소리가 그쳤다.
때로 악몽을 꿨다. 오지 않은 미래를 두고서 나는 씨름을 했고, 이미 거북해진 과거에 고통스러워서 거울을 깼다. 부끄러워서, 열지 못한 봉투 몇 개엔 편지가 있었다. 잊어버린 나의 글씨들, 나누어서 담아둔 초록의 치기, 때때로 오는 연락은 나와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기표記表였다.
아침의 시간이 천장이 내려오는 속도보다 느리길 바랐다. 겨우 너덧 평을 가졌다가 고통의 크기마저 행복이던 삶이 닫히고 다른 쪽에 창이 나는 게 들렸다. 가늠치 못할 만큼의 삶이 있었다. 오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