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 우니, 사실 두려운 것은

대지를 닮아서 품는 게 아니라, 마음이 동그랗기 때문에 가슴을 연 게 아니라, 빗방울이 올 경향을 알아서 우산을 건넨 게 아니라, 잊히는 게 두려워서 우는 게 아니라, 바람에 눈이 시려서 고개를 돌린 게 아니라, 외로워서 입을 맞춘 게 아니라.

종소리를 듣고 싶어서, 나무 자라는 진동을 느끼고 싶어서, 한 꺼풀씩 덧신을 신어가면서 자라나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 내 뜻대로 껍질을 부수는 걸 알고 싶어서, 손끝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싶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사라지는 순간을 쌓고 싶어서.

톺아보니 생이 물처럼 흐르고 있고, 사실 바다가 두려운 것은 이 삶에 반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초가 왜곡돼 속도를 더해가면서 멀어질까 봐. 다시 생각하면 유일한 걱정거리는 그것뿐이다.

봄볕 유언

사그라질 때를 기다리며, 남을 것을 기억하지 말자. 지워진 뒤 따를 것은 이미 품에 없나니, 고민은 멋 부림의 다름 아니다. 미련에 천착 않겠다. 사는 동안 꽃 피우겠다. 없는 우연부터 만들어 가겠다. 지나칠 옷깃에 겨워 쉽게 울겠다. 향기나 악취에 멀겋게 있지 않을 것이고, 쓸데없는 아집이나 피로를 까닭 삼아 날을 세우지 않을 테다. 시간이 봄으로 구르는 동안, 적어도 놓지 않을 것을 허투루 곪게 하지 않겠다.

풍장風葬을 해다오. 비탈길에 뉘어 녹아 흐르며 바다를 안으면 참으로 좋겠네. 저녁엔 바뀐 바람길을 타고 고운 임들 계신 터로 가오리다. 문배주 없이 절도 않고 뉘엿뉘엿 갈빗대 아래 남겨둔 이야기를 하면 좋겠네.

선악 바깥에서 쉽게 구르다가, 나는 신의 놀이가 시시해졌다. 하지夏至가 오기 전 어느 날의 정오正午에 나는 고개를 자오선子午線을 따라 굴렸다. 잊고 싶던 것들이 놓고 싶지 않던 것들과 함께 쇠하여 갔다. 자연스러운, 한없이 그러한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