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는 오른쪽에서

나는 가을 태풍이 무섭다가, 어느 순간 편안해졌다. 쌓여있는 역사가 흐트러지는 게, 오래된 소요가 동동거리는 걸 불안에 젖어서 쳐다보다가, 먼바다의 고요에 젖었다. 우리는 단일폐곡선에 갇혀서 이월된 사랑을 먹었다. 마음만큼 크지 않은 접시 위에 올려야 하는 게 많아서 식탁보가 아쉬움으로 젖었다. 탁, 하고 릴테이프가 멈추고 무섭다가 편안해졌던 태풍의 소리가 그쳤다. 

때로 악몽을 꿨다. 오지 않은 미래를 두고서 나는 씨름을 했고, 이미 거북해진 과거에 고통스러워서 거울을 깼다. 부끄러워서, 열지 못한 봉투 몇 개엔 편지가 있었다. 잊어버린 나의 글씨들, 나누어서 담아둔 초록의 치기, 때때로 오는 연락은 나와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기표記表였다.

아침의 시간이 천장이 내려오는 속도보다 느리길 바랐다. 겨우 너덧 평을 가졌다가 고통의 크기마저 행복이던 삶이 닫히고 다른 쪽에 창이 나는 게 들렸다. 가늠치 못할 만큼의 삶이 있었다. 오늘도 있다.

모르고 사랑하는 사이

잊혀질 권리를 얻으려면, 우리는 아파야 해 눈물이 나야 해 다시 태어나서, 지금같은 가슴을 버려야 해 쉽게 버려야 해 부러진 가지를 꼭 동여매서 잡고, 먼 곳으로 나아가야 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모두 사라진 사람인냥 석양의 방향 쪽에서 타다 만 냄새가 난다 우리는 등을 맞대고서, 오래된 집이 불타는 것을 가운데 두고 시선을 나눈다 불길이 커지고, 서로 있는지 사라졌는지 모르는 상태로, 지구가 도는 소리를 느낀다 도미솔 도미솔 도파라 솔시레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나를, 너는 저어했지 괜찮아, 실패하면서 나는 살거야 행복하길 바라 서름서름한 눈빛을 꺾고, 오래된 땅에 골을 내어서 좁은 문을 지나간다 사랑에 무뎌지고, 어간語幹 아닌 어미語尾만 늘어놓는 사람들 거울을 보았다 눈앞이 흐렸다 때때로 한강이 거꾸로 흐르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