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이자 항일·민주화 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태영 변호사와 8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일형 제6대 외무부(외교통상부) 장관의 막내딸 정미숙씨가 모은 조선 말기 가구와 한옥 등을 볼 수 있는 사립 한국가구박물관을 홀로 다녀왔다. 성북구 성북동 대사관저와 대저택이 있는 전통의 부촌 꼭대기, 최고급 요정 대원각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길상사의 어깨 위에 있는 공간은 고요했고 도도했고, 또 무척 방어적이었다. 소반과 장, 농, 함 같은 가장 쉬운 고전 흔적들을 어렵게 담아놓은 것은 시대가 만든 것일까, 분위기가 지은 것일까.

결혼식 대관을 한다고 했다. 한복을 입어야 하고, 케이터링은 삼성그룹 호텔신라에서만 받으며, 인원 제한이 있는. 회의를 위한 대관도 한다고 했다, 대기업 사장단 수준이 모이는. 찾아도 된다고 했다, 예약에 성공한다면. 남의 집 담 안을 들여다 보는데 몇 만원, 차경借景만으로 그 돈 값어치를 했건만 마음 편안함은 사지 못했다. 팔지 아니했거든.

혼란은 가셨지만 평안에 이르지 못해 갈피 잡지 못하는 시간을 쌓고 있다.

나는, 있지,

안녕하세요. 결혼정보회사라고요.

무어라도 말하라면서요. 이뤄질 수 있는 것 없지 않나요. 모집단에서 표본집단을 뽑는다는 게, 꽃밭이나 어장에서 선별된 것을 잘라내거나 뽑는다는 것 아니잖아요. 그게 잡초로 가득한 화원인지, 시간마저 느려질 뻔한 적도 혹은 심해의 구석진 자리일지 알 바 있나요. 제가 사랑을 해야 한다니요. 뒤집힌 인과 아닌가요. 제 것을 내놓으라니요.

때나 수를 맞출 수 있나요. 저는 일을 잘하고 싶지만, 가족과 일을 저울에 굳이 두자면 퇴사나 절필도 요원하지 않지요. 성관계는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을 만큼은, 대화도 그만큼, 입맞춤은 그의 제곱쯤, 산책은 그의 절반쯤, 다툼은 그의 제곱근 정도. 아닌 거 알아요. 그대로만 되지 않는 것도요. 그렇지만, 말씀하여 보라면서요.

저녁엔 쳇 베이커나 아이코, 윤상, 모브닝, 혁오 또 브르노 마스를 들어요, 구글음악으로요. 자연스럽게 다른 재즈나 피아니스트 연주, 인디음악로 넘어가지요. 매일 틀면 똑같은 음율이 흐르지 않지요, 조금씩의 변주. 우리 삶도 그렇잖아요. 같은 직장에서 무엇을 더 크게 바라는가, 그 말씀이죠. 그래서는 결혼할 수 있겠냐는, 그 말씀이지요. 모르겠어요. 서른살을 넘어서는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겨우 이해가 되지만, 아가를 만나거나 반려자를 만나기에 점점 늦어지는 시간이 아니냐 그 말씀이지요. 모르겠어요.

기피하지 아니하는 키나 직업, 체형이나 외모, 원천징수, 가족관계, 질환여부를 말하라고요. 중요하겠죠. 틀린 말씀이라는 게 아녜요. 그렇게 듣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제가 모두 벗고 털어놓아야 하는 것은 왜 말씀을 미루시나요. 탈모 가족력이나 아버지의 직업, 유전적 질환, 성적 생산능력은 부차적인 건가요.

선생님의 시간의 가치를 알아요. 그래서 전화는 이쯤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럴 자신이 없어요. 그럴 마음이 있지만, 어떤 관계에서 제가 하였던 말이지만, 제가 충분히 좋은 사람일지 여전히 우려 됩니다. 아시잖아요 이쯤이면, 재미도 없고 따분한 사람인 걸요. 귀찮고 발랄하지 못해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저도 확신 못하는 걸요.

그래도, 그래도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저에게는 ‘그 시장의 필살기’가 있어요. 연봉을 말씀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