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현재라면 돼요.

나는 과거를 사랑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밀어내거나 멀리하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가까운 과거에서부터다. 먼 과거나 기억 밖의 과거는 그런 결단과는 틈이 있다. 가깝게는 가족이나 교제했던 사람, 멀리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친 사람과의 접촉이나 폭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의 어제와도 그래,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대화했는지, 어떤 조건을 사랑이라 규정했는지도 마찬가지다.

현재를 버티기도 힘들어, 공부도 취재도 사람도 체력도, 그밖의 오늘의 공상까지도. 가까운 내일이 없길 바랄 때가 많은 것은 지금의 고충이 켜켜이 쌓이기 때문, 물론 이 모든 게 고통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들을 후회할 시간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꽤 무거웠나 보다, 아주 오랜만에 가까운 과거에 진 돈의 무게는. 나는 25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신용카드도 잘랐고, 대중교통도 값을 따졌고, 정규직으로 만 10년, 비정규직을 더해서 열다섯 해째 일하면서도 백만원 장학금에 허기졌다. 침대를 놓는 값, 만남을 해태解胎하는 대가, 욕심에는 경계선이 없거나 한쪽으로만 밀 수 있는 것일까. 지독하게도 자본주의가 외롭다는 것을 이따금 느꼈다. 그것은 나의 탓일까, 나는 용기와 업태를 양 저울팔에 올리고도 양 손을 놓지 못했다. 두려워서, 겁이 나서.

현재에 있겠어요, 그럼에도. 지금 여기 살고 있어요. 피를 내지 않고 항생제를 먹고, F코드를 치는 사람들 옆에서, 나는 계량되지 않는 사람으로 이곳에 서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