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TheBlank 작성

욕심 없는 바람, 무리 없는 사랑, 얕지 않은 두터움

우리 사랑을 공청할 때

얕은 언덕에 박힌 가시는 시간을 질질 끌다 점점 가팔라졌다 우리가 허공에 흩뿌린 말들이 턱 어깨 가슴 아래로 쏟아질 때 질기디질겨서 찢기진 않더라도 뒤틀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온 관계는 비틀렸다. 서로 다른 시공에서 우리 낱말은 가루가 됐다 숨에 이의가 생기고 콧소리에 반론이 붙었다 지난주까지 나눌 수 있던 분모가 분해돼 해解 아닌 이異로 옮겨갈 때, 어차피 기각 못할 오염이 묻어 우리는 벽에 가로 막혔다

당신과 나는 피고도 원고도 되지 못해 이제 막대 뒤에서 껍데기같은 우리 모습을 훌쩍이며 몰래 보다가, 눈을 마주쳐도 반짝이는 흔적만 남겨서 이제 우리는 뒤뜰로 떠난다

우리 사랑을 공청할 때, 이 낮은 공기가 나뭇잎처럼 떨어진다 지금 이것은 말이 되는 소린가

궁금증에 목마른 너에게

이 시간은 낮은 하늘과 더 가라앉아 지나는 구름의 틈 사이로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우리는 빛보다 시간이 빠른 것을 알고, 먼 허공에서 네 눈빛이 살아있다는 감정 정도 깨우치지 못해 이렇게 노쇠한 우매에 치여 산다

하루씩 터지는 치자는 늦봄을 깨우는데, 사랑은 어디서 춘곤에 빠져있는가 사랑의 주변에서 꽃말만 쳐다 보면서, 낭만의 동네 연남에서 주말을 기각하며

바닷바람이 그리워 엄마 품이 그리워 아니, 사실 깜빡거리는 먼 바다 등대를 베란다에서 보던 그 분초가 그리워서

전화벨 소리와 익명의 당신, 22분

어둠이 깔린 허공 가운데 전화기와 컴퓨터, 텔레비전이 있는 사무공간, 거기 앉거나 서서 이따금 뛰쳐나가면서 당직근무를 할때면 공기가 무겁다. 근신은 어려운 것, 버티다가 쪼개지거나 틀어지는 게 당간幢竿을 버티는 인생이라도 쏟아지는 소문과 소식, 주장과 판결 속에 서 있을 때면 태풍을 겨우 우산 하나로 버티는 기분이 들때가 있는다. 나는 이를 얼마나 잘 알아 쓰고 덮는가. 다시, 나는 이에 얼마큼 관심을 쏟았길래 귀를 기울일 시간을 얻는가. 풍문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를 끝끝내 좇아, 그것이 공공과 어떤 연이 닿았는지 접붙임하는 것에 익명이 임의의 생각을 던지는 사이에 나는 어떤 삶으로 내 집을 짓고 있는가.

온갖 생각이 사실관계 사이에서 뒹군다. 전화벨이 울린다. 나와 송수화기 사이의 거리에 회오리가 돈다. 정돈할 시간이 필요하고, 펜과 종이, 휴대폰의 녹음기를 습관적으로 준비한다.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서사를 일러준다. 자신이 살아온 날, 오래 전 느꼈던 기자의 날선 말투, 사건이나 상황을 ‘써먹고 버린다’는 토로, 기사를 쓰는 ‘의도’, 지키고 싶은 사람과 신념, 그런 것이 술기운과 함께 전화를 통해 내 폐부를 찌른다. 그리고 알려달라는 어떤 이의 전화번호. 오랫동안 공감은 한계가 있는 대답에 멈춰 섰지만 당신은 나에게 오히려 감사에 대한 감사를 줬다.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아요, 기자가. 그래도 제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앞으로, 제대로 되면 좋겠어요. 다른 기자들과 다른 그런.”

심야가 가까워져가고 내 퇴근은 벌써 길게 미뤄졌지만 그의 이야기는 이후로도 10분 넘게 이어졌다. 물론 그는 자신이 건 언론사가, 자신이 읽은 기사를 쓴 곳이 아니라는 것을 22분께가 되서야 알게 됐고 지탄은 내, 우리의 몫이 아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우리는 모두 같은 짐을 지고 있지 않은가.

한 동료는 내 워딩을 불편해 한다. 나는 그저 전화를 받고 사람의 눈을 보며, 또 가끔 눈물이 고일 뻔 했을 뿐이다. 협잡꾼에 호사가가 되지 않도록, 오직 관성에 젖어 삶을 바라보지 않도록, 부족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외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저마다 제목을 지으며

제목짓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통신사에서 ‘씨알도 안 먹힐’ 제목을 달아서 올린다. 편집부나 데스크 선에서 훨씬 더 정갈하게 조정된다. 이의는 없다. 나보다 더 오랜 시절 기사를 썼고, 제목 한 글자 차이가 얼마큼 중요한지 이미 뼈까지 아는 선배들이다. 그래서 내가 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 지워지거나 글자가 조정되더라도, 빈칸 포함 스물 몇 자 안에 본질을 담고 싶은 것이다.

아주 오래 전 고건 전 총리와 관련한 기사의 제목을 기억한다. 명확하지 않으나 ‘髙, Stop’ 이거나 ‘Go, 建’ 중 하나일 것이다. 다시 H모 신문의 이 모 기자가 쓴 기사 제목이 떠오른다, ‘죽어서 보이지 않는 나는 살았을 때부터 유령이었다’. 또다른 르포르타주 명패도 있다, 다시 그 신문의 ‘환락가 한가운데서 그 시절 치부를 읽는다’.

우리는 애를 써서 글을 짓고 공간에 털고 관심을 바란다. 포장지야 어떻게 됐든 한땀한땀 고급이라 문장을 지었으나 때때로 얼굴은 그대로 두곤 했다. 화장 하거나 성형할 필요는 없으나 눈곱 정도는 떼고 머리에는 물 정도 묻혀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을 테였을 때도 겁을 먹기도 했다.

사람의 시간을 먹는 직업을 살면서, 나는 적어도 앞머리 정도는 만지기로 했다. 애쓴 오늘, 나는 나에게 ‘그래도 열심히 묻고 치열하게 눌러 적은’ 정도 수식어는 붙여주기로 했다.

[화보] 사진기를 받으면서

 

 

아빠는 예술혼이 넘치는 사내였다. 취업하고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서도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 피사체는 자연이나 사람에게서 가족으로 변했어도 오래된 네거티브 필름과 인화물을 살펴보면 그 실력은 시대 이상을 품고 있다. 노동부 장관배 노동자 사진대회던가, 오래된 앨범 속에 수상자 이름에는 뿔테를 쓴 아빠가 흑백으로 남아있다.

피는 돌고 도는 게 맞는가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가, 세뱃돈을 몽땅 털어서 코닥 이지쉐어 디지털 카메라를 샀다, 내 첫 카메라. 80만화소, 100만화소, 200만화소 수준인 그것을 한참동안 쓰다가 결국 망가뜨리고서 장롱, 안방 장롱에서 일본 니콘사에서 만든 FM2를 발견했다. 첫 수동 사진기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곧바로 찾은 게 사진부였다. 사진예술연구회라는 이름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거창했으나 그때 배운 가락으로 부장까지 하고, 연이어 청춘을 바친 부대신문에서는 문화부에 이어 사진 전임기자도 지냈다.

그 전후로 나는 사진기 춘추전국의 시기를 보냈다. 감성에 호소하는 로모사의 LC-A부터 당시 고급기에 속하던 니콘사 D1x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캐논사, 소니사, 삼성사의 DSLR, 오래된 명작인 라이카사 M3과 콘탁스, 보잌틀란더를 위시한 RF, 핫셀블라드의 아류인 젠자 브로니카, 롤라이플렉스 등 중형 사진기까지. 당시 중고거래 기록은 끝도 없는 페이지로 대변된다.

어느날은 그런 생각도 한참이나 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였으면 하는 그런. 머릿속에는 이미 조리갯값과 셔터속도가 팽이처럼 종일 돌아가고 있었다. 흑백필름 현상과 암실의 닷징, 버닝, 엘리드와 일포드.

여전히 사진과 영상을 사랑하지만, 결이 다른 이야기를 쓰던 나에게 오늘 누군가 당신이 내게 카메라를 쥐여줬다. 누군가였다면 ‘이것 업무 더 시키는 것 아니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저 고맙고 또 반갑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고팠던 인정을 오늘 나는 받았다.

[화보] 물론 의례적인 호칭이라도

 

평창올림픽 취재 이후 1년만의 강원 취재, 좋은 일로 가고 싶었지만. 준칙을 내려받아 되뇌면서 단어 선택은 더 조심했던 사흘,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 어느덧 뛰어다닌 지 7년. 여전히 하루하루 부끄러운데 ‘물론 의례적인 호칭이라도’ 선배(지위나 나이, 학예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이)가 돼가고 있는지 조심스러움은 늘었고 고민도 깊어지고.

나는 우산이 없지만 이 비가

서울을 향하는 고속도로에 비가 내린다. 장천마을에서 맞은 몇 방울이 아니라 그래도 땅을 적실만큼, 부족하진 않게 넉넉히 내린다.

길고긴 한주를 마치기 위해 집으로, 세번째 고향같은 연남동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땀에 젖은, 사흘째 입은 옷과 먼지투성이가 돼버린 가방을, 보조배터리와 충전기, 수첩과 수건, 텀블러가 대충 들어차 있는 배낭이 복잡고단한 날을 반증한다.

지난 주말 추위 속에서 핀 벚꽃을 마주한 사람들을 만나고 묻고 썼다. 그치들이 그랬다.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에 꽃이 핀다는데, 그 사이에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와서 다 지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굳이 이번주에 왔다”고.

그들 역시 이 비는 반가울 것이다. 먼저 얻은 사진 때문이 아니라 땅 속에서 숨쉬고 있을지 모르는 잔불을 이 비가 깨끗하게 안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리라고, 나는 믿는다.

과하지 않게 다가가 조심히 묻고, 뒤로는 열심히 찾아대면서 버티려고 한다. 지난 목요일에는 14년 만에 가위에 눌렸다. 피곤하면 때때로 왼쪽 눈이 뿌옇다. 부단히 읽고 심각하게 고민해도 누군가는 그를 쉽게 욕하고 손쉽게 몰아붙이곤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고개 숙이고 낮게 가겠다.

집에 가는 길, 나는 우산이 없지만 이 비가 좀더 거세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