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TheBlank 작성

욕심 없는 바람, 무리 없는 사랑, 얕지 않은 두터움

내 친구 유선이 결혼한다

바람부는 향교 뜰에서 천리향이 난다

전주에는 없는 바다, 그렇지만 연무 내음이 나는 까닭은 우리 삶이 짠내에 찌들어도 향기랑 함께 뒹굴기 때문에

7년,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까지 이 줄넘기는 각자 멈출 줄 몰랐고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로 겹쳤던 포지티브 필름은 각자 어두운 우물부터 삶을 현상해서 이렇게 나타났다, 어눌한 적등이 빛을 발하면서 우리는 무대를 세웠지

그랬던 내 친구 유선이 결혼한다, “남의 얼굴에 책임질 자신이 없는 편집증 탓에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 남긴 단체 사진같은 것도 조심스럽다”는 내게 “별 것이냐”며 호탕한 웃음 뿌리는 그가

가을 바람이 불 것이다, 개수대의 물을 비워내고 식탁을 뽀득뽀득 닦고 전주 완산 교동에 뜨끈한 밥을 먹으러 갈 때쯤이면

어느 정도냐면, 마라톤 대회 참가를 취소했다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온 편지

숲길을 달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인생은 한 방향으로 간다. 2000년 동안 누구도 거스를 수 없던 화살표, 우리는 점을 따라서, 때로 별빛이라고 부르던 과거를 제치면서 역사에 머리를 박았다.

삼성역 사거리에도 플라타너스가 넓게 드리웠는지, 모래 위에 쌓은 땅에는 지금쯤 낙엽이 제멋대로 휘날리려는지, 강바람을 보면 여전히 오른쪽 눈을 더 깊이 깜빡거리면서 눈물을 보이는지 궁금해. “삶은 물에서 와서 심해를 거쳐서 결국 불확실성에 몸 맡기게 된다”고, 네가 그랬잖니. 이렇게 떠나와 버렸네, 우리 미래는 숲에 담아둔 채.

“서울을 떠날 것이고, 일은 그만둘 것이야. 이 일은 정신을 갉아먹어, 시도 때도 없이 바빠서가 아니야.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을 엮어야 하기 때문이지.”

풀이 눕는 틈에, 바람이 길을 잃는 사이에, 산등성이에서 뚝뚝 떨어져 산허리까지 굴러 내려온 개암을 보다가 이렇게 글을 짓는다. 글씨를 엮어서 마음을 보내. 복잡계에 든 너에게.

환상통幻想痛

내 벽에는 한 장의 종이가 붙어있다. 위쪽만 고정해 둔 탓에 바람에 잘도 날려서 덜렁덜렁 존재를 알리는 종이에는 사건번호와 처분일자가 박혀있고, 내 양심도 몇 줄 걸려 있다.

아주 짧은 글에도 어떤 거짓이 없게 하려는 다짐은 때때로 남들에게 오해가 된다. 사실에 대한 물음은 관계의 왜곡을 부르기도 하고 거짓에 대한 질문은 전쟁의 첨병으로 되돌아 올 때도 있다. 그러나 챙겨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이 돼 가는 과정에서, 어제는 그제는 그끄제는 부끄럽게 살지 않았는지 여전히 되묻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운 적이, 다행히 아직 없었다. 부끄러웠다면 나는, 그랬다면 나는 부끄럽다는 말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괘씸한 새끼처럼 숨어 버렸을까.

타사의 어떤 후배가 내게 말했다, “칠 수 있을 때 치자”고. “이마저도 못하는 날이 올지, 어떻게 아느냐”고. 어떤 사실이나 답답한 상황에도 방어적으로, 섀우 복싱을 한 적 없는데, 나는. 그래도,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온 방식이 다르면서 때때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덜렁이는 결과를 보면서, 조금은 웃었다. 고마운 사람들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알까. 전세자금 이자 십 수만 원에도 벌벌 떠는, 속칭 ‘핫플레이스’라고 뜨는 동네에 살면서도 옥탑방이나 다를 바 없는 더위에 얼린 물병을 꼭 껴안고 자는. 도통 넉살이 없어서, 누가 사준 아이스 커피 한 잔, 오천 원 만 원 안팎 간식을 꼬박꼬박 기억하면서 되갚아야 성질이 풀리는. 후불교통비, 전기와 가스 요금을 내면서도 행복하다 생각하는, 그런.

피의 사건 종이를 보다가, 그래도 잘 지내왔다며 짧은 주말에 웃었다. 헛되이 살지 말자, 아직은.

무작위에서 부작위不作爲까지

빛을 독점하자 땅을 독점하자 고집과 삶의 길을 독점하자 노을을 독점하고, 시간을 독점하자 나눠져서 끊어져있는 이 삶에서 저 삶을 미분해서 부등식에 넣자, 등호等號가 차려져 있지 않은 차림에서

이 표본집단에 당신은 없다, 아니면 모집단일까 크레바스 사이 깊이는 얼마나 될까 우리 공전은 주기를 맞출 수 있을까 오래된 신앙은 잡념이 됐고 성서는 갈등이 됐다 부등호不等式의 큰 쪽은 창의 날을 세웠다, 논리로는 피할 수 없이

부단히 가벼운 것은 마음의 바다 위로 떠올라서 가라앉지 않았다, 그럴 수 없기에 그것은 사랑이거나 자연스러움이거나 또는 외로움이었다 갠지스 위에 떠가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오래된 바다는 계속 새 마음결을 가능하게 했다, 내가 잡지 못하였으나

포유류는 숨이 필요해서 심해로 숨어든 돌고래도 입을 뻐끔 하늘에 가져다 대야 했으나 반대인 녀석도 있었다, 평생 심해바닥에서 수면에 떠있는 불빛을 외계인이라고 여기면서

요하다, 사랑

이력서를 두 장에서 한장으로 자르면서

빼고 싶은 것보다 빼야 할 것을 들어내야 해.

이를테면 고민같은 욕심보다 형편없는 쓰잘데기 같은 것.

사금도 금이지만 종이 위 역사는 어제도 있던 것이니.

그렇지만 떼어내기가 아예 쉬운 것이란 것은 없어.

그리하여서 삶에는 선택이 필요해, 복수응답 불가능한.

주관식 같지만 이건 객관식 전쟁 같아, 종종 때때로 자주.

만다꼬

우예 안되겠는교. 그기 어짜피 낸가 내 아인가 알지 모르겠넌데 소무이 발 없이고 막 달리가뿔고 그칸 거 아인가베. 그기 내사 맘대로 됐씸 따로 이캉 연락 했겠심까.

만다꼬, 그이 해봐야 되는 기가 안되고 안되는 기 즈 맘코롬 바뀌고 그칸 거 아인거 다 알지요. 아는데, 그래도 함 말이나 해보작꼬 이래 한거 아이요.

알아요, 알아. 그래가 내 억지는 아이라고 첨보텀 마랬찌요. 마, 오해는 마소.

나가요

아따 마 겁나 휘몰아 칩디다. 인자 저그 우로 날아오는게 구름인가 아니먼 어디서 온갖것이 모대껴서 치솟는지는 몰르것소만 암치 안케 바닷가에서 그것을 고로코롬 바라보고 있슴시롱 맴이 편하다 하것소.

언덕 넘으믄 행님네 마당이 있을 것인디, 거에는 분명 고추랑 도라지 끊어 논 놈 한바가지가 훌훌 널부러져 있을 거신디 진작에 고것이 사라져 부러도 그건 되아 부럿소.

근디 말이여, 인냐. 엄니 맘도 떠나불고 행님도 허바 갈길 가불믄 내 맴이 어찌된다 말인갑서. 고것이 거시기한다 해도, 암시랑도 안허다고 누가 그런다요. 언 놈이.

나가요. 아무리 저 파도가 몰리오고 하늘이 흔들거리도 잊지 못하고 놓지 못하는거이 있단 말이세. 그게 놈 말처럼 쉽당가. 사람이 거시기 해뿐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