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정을 위해서

이별을 위해서 사랑하는 걸 미안해하지 마세요. 알고 있었죠, 감정 타는 사람인 것을.

그런 걱정 정도로 삶을 판단할까요. 사람 무너지는 속도가 애끓는 것보다 빠를까요. 그렇다고 오해 말아요. 나도 끓는 점 낮지 않거든요. 아프지 않아서 아픈 티 내지 않는 게 아니 거든요.

계절을 불러야 낙엽 질까요. 벚꽃이 탈락하는 게 봄이 깊어진 걸 의미하나요. 모르죠. 다 살아보지 않았잖아요. 나를 모르잖아요. 내가 알려준 내가 난지 스스로 모르는데, 어떻게 당신 계절이 내 막간幕間을 갈라놓나요.

아시잖아요, 오롯이 사랑한 거. 모르잖아요, 숨고 싶은 거. 관심 없잖아요, 어느 틈이 막혀있다가 뚫렸고 다시 어느 길은 끊어졌고.

종교가 사분오열되는 동안 신神은 초연했고, 사랑이 뒤덮이다가 폭탄이 떨어지는 찰나에 우리 사이는 진공이 됐다가 알 수 없을 임의 방향으로 흩어지겠죠. 섣부른 걱정이란 요要하지 않으니 그저 그뿐일 테죠.

사막은 길었고, 당신은 물 마르는 길목에서 영생을 찾았죠. 그건 오해가 아니라 신앙 같은 거, 흔하게 오지 않는 운명의 감정선.

많은 두려움과 우려 속에서, 굳이 그 안에서 진주를 찾지 않더라도, 굳고 얼고 다시 녹는 게 마음이란 걸 우습게도, 쉽게 알았죠. 2시간만 얼굴 볼까요. 아니면 3시간만 감상에 젖어볼까요. 아니면 15분쯤 같이 걱정이나 할까요. 혹시 1초쯤 사랑 어때요. 그게 영원하면 난 어쩌죠, 다행히 시간이 갈라줄 게 많겠지만요.

사랑에서 미안한 것을 이별하지 말아요. 알고 있었죠, 사람 타는 감정이란 걸.

걸어 나가며, 윤일성과 김현철

회사 창립 10주년 행사로 나무를 심었다. 10년 만에 이만큼 자란 것의 반절을 함께 했고 지난 직장보다 길게 다니게 된 회사에서 비를 뚫고 묘목을 심고, 이름표를 달았다. 황덕현, 윤일성, 김현철.


가족 아닌 사람들의 이름을 묘목에 건 것은, 어떤 트라우마가 아닌 동행의 의미다. 각각 자신의 품으로 돌아간 사람들과 남겨진 생존자 사이엔 어떤 연결고리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저 잊지 못하는 특성으로 머리에 이고 가는 숙명인 거다. 망각은 축복이고, 퇴화는 집중이다.


환경과 개발 문제를 생각하던 윤은 더이상 숨을 쉬지 않고, 모든 소리를 두 손으로 섞어 만들던 김도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비가 몰아치는 아침 ‘굳이 정하지 않아도 된다’던 명패 아래 몇 칸을 이들 이름으로 채운 것은 어쩌면 내 욕심, 그래도 내보는 것 나쁜 게 아니니까.


난 언제쯤 축복을 얻게 될까. 어떤 집중의 때를 맞이하게 될까. 객관식은 오답에도 편리하지만, 여전히 난 물어 따지는 주관식을 좋아했다. 생각을 멈추고, 나는 심호흡을 했다.


비가 여전히 오고 있고, 조경사들은 “땅을 밟지 말라. 지중과 대기 사이 공간을 터야 잘 살 수 있다”는 식의 조언을 했다. 난 그들에게, 그 말에 감사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