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적, 어쩌면 가짜 벽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나 논리가 아닌 취향과 생활양식의 부분이 되는 경우를 꽤 봤다. 그냥 거리두고 싶어지는 것은, 그렇게 서글프지 않지만 판단된다는 다른 차원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들을 가름해 부르지 않고 ‘어떤 부류’로 통칭하는 것에서 나는 슬픔을 느꼈다.

우리는 충분히 살펴서 호불호를 분간하는가. 옳음과 그릇됨을 바루어서 순간을 평결하는가. 이를테면 젊은 시절 민주 투사로 세상을 바꾸는데 맨 앞에 섰던 사람의 음주운전, 위험운전치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회개한 반민족주의자가 국립대학에 기부한 수천억원은 어떻게 생각되는가. 또 시세를 임의로 조정해 소액주주의 자살을 부르고, 피눈물 나게 했던 이의 재 창업 재기는. 예들은 현실과 멀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지천에 있다. 어제 해명을 요구했던 사람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경하는 사람의 목록에 있었고, 사적으로 호쾌한 이는 실은 ‘호적에 붉은 줄’이 있는 이기도 하기에.

지극히 가까운 점에서 그러하다면 조금 먼 데 있는 상황은 쉽게 분별될까. 사장은, 시장은, 총리는, 대통령은 또 더 멀고도 먼 데서 머리 위 부모는. 오래 전 그런 이야기를 내게 조심스럽게 하면서 우는 이 낯을 본 적 있다, 내 부모가 어떠어떠한 혐의로 수감된 바 있는 전과자였다는.

우리는 쉽게 살고 있지만, 사실 꽤 복잡하게도 꼬인 실을 따라 앞으로 가고 있다. 벽장에 넣어두었던 낫을 보려고 문을 열었더니 사실 그 안에는 호미가 있었다. 장 뒤가 무너졌고, 내 얼굴이 보였다.

어차피 몇 개는 쓸 데 없어서

잔가지 몇 개는 살려놓더라도, 우리는 종단終端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고까운 시선으로, 냉소적으로 보자는 말이 아니다. 뻗어 나가는 데 한계를 둔다는 것인데 적어도 그렇게 산지 벌써 10년은 된 듯하다.

파생派生에 흥미 없다. 목적에 따라 지금까지 왔다. 그게 사랑이라면 사랑, 취미라면 취미 또 일. 업에서 사랑을 찾지 아니했고 취미에서 유흥을 따르지 않았고 남에게서 나를 찾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게 무슨 소용이었나 싶은 것이다, 이제. 결국 몇 개 노력은, 물론 위법 혹은 부당한 경우는 만들지 않았으나, 하나 마나 였다. 정신적 고민의 소모, 주어가 나였다.

스물 몇 살부터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았다. 경험적 각론各論에 하자가 있다는 건 마음에 좀 부스러기가 남아서 그런가. 물론 알고 있지, 쓸모없는 순간은 없었다는 것을.

서른 몇 살부터 남은 삶을 상여賞與로 살지 역전逆轉의 도화선으로 당길지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마음이 어린 셈이구나, 하고 느꼈다.

마음대로 단어를 지껄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