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침을 따라 찢어질 때

사랑이 시침을 따라 찢어질 때 나는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알았던 사람인가 몰랐던 태態일까 지나가면서 바라보던, 건너편에 서 있던 모습이 내 고개와 반대 방향으로 갸우뚱 했다.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으니 그는 오히려 나와 같은 눈동자를 가졌다 생각했는데, 노을 지는 시분초에 따라서 달라지는 얼굴과 이마 근육의 움직임, 입술의 끝에 걸린 달과 별의 그림자 그 모든 것은 방향을 꺾어 외진 방향으로 갔다 차원이 달라지고 오르락 내리락 거리던 어두운 자락에서 당신은 내 반작용이 되어서

사랑이라 생각했던 사물이 빙평선氷平線 아래로 침몰하고, 마음을 온통 보여줬고 지난 사랑에 겁을 먹은 너는 뒷걸음질 해서

갔다, 뒷걸음질을 할 수 없는 토끼 같은 우리들은 깡충깡충

사랑이 시침에 따라 찢어질 때, 나는 얼굴을 봤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신기루였다 실체와 분리돼 버린

백림의 길에서, 1편 2장 길은 때로 도전이 됐다

답답할 때면 달리기를 했다. 2012년부터 뛰었다. 온천천을 뛰었다. 다리 위로는 1호선이 달렸다. 대개 내가 닿는 곳은 동래역,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광안리까지도 갔다. 회가 올라간 접시나 맥주 몇 캔을 들고 모래를 밟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도 크게 소리를 지르고 49번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렇게 가던 복귀는 어느 순간 버스 탑승용 후불교통카드가 필요 없을 지경이 됐다. 울분에서 시작된 뜀박질이 숨과 다리로 내려온 것.

굳이 빠를 필요도 없었고, 멀리 갈 필요 없었던 길은 때로 도전이 됐다.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됐던 것이다. 거기에는 운동 용품을 만들어 파는 아디다스, 나이키, 뉴발란스 등 회사의 마케팅 행위가 주효했다. 트레이닝 런은 실은 트레이닝과 함께 신제품을 선보이는 온갖 종류의 대화가 들어 있었다. 물론 그게 싫은 것은, 당시에도 지금도 결코 아니다. 이건 자유로운 의지 아래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교환행위니까. 그러나 때로 대회와 연계한 신기술 채택 제품의 출시는 왜 그렇게도 기가 막혔던 것인지. 시즌별 밀어대는 물건의 이야기, 소위 ‘스토리텔링’은 인제 와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수준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리기를 이어갔던 것은 ‘가장 정직한 운동’이라는 오래된 표어기 때문이었다. 모든 말과 상황은 수시로 바뀐다. ‘덜 정직한 운동’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느끼는 수준을 넓게 잡자면 달리기는 ‘가장 평화로운 운동’이었다. 사실, 그래. 당첨부터 9월 중순까지 150여일 동안은 그랬다.

백림의 길에서, 1편 1장 백림 방향

젖꼭지와 발등 위에 꽃이 피었다. 피가 흐르다 멈춘 딱지다. 가까운 기억이 몸에 남았다. 가까운 날이라고 자세히 기억남는 것은 아닌데 독일의, 백림은 서울까지 이어진다. 짧고 강렬한 닷새가 서른 둘 짧은 내 삶에 적혔다.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더 가기 전에 그를 종이와 공간에 남겨 본다.

이 일을 가진 뒤로 매년 여름은 가까운 곳에서 보냈다. 저금과 적금을 열심히 하면서 대학원 학비도 한 해 1200만원 이상 내는 삶에 익숙해진 탓인지 가까운 나라에서 도피의 목마름을 채웠다. 그것은 대개 일본이나 홍콩, 멀어야 베트남, 태국의 만곡에서 그쳤고 그 이상 샘은 시샘만 했던 것이다.

석사를 받아들게 될 것을 확신했던 탓일까, 아니면 무언가 도전해야겠다는 생각 탓일까. 지난 2017년 10월 18일 밤 알게 된 백림의 달리기 대회를 놓고 나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고서 신청을 눌렀다. 그리고 곧바로 좌절했다. 의지보다 부족했던 돈 23만원이 없었던 것이다.

백림의 대회는 선정된 이에게 최종 결제해 돈을 거둬가지만 앞서 결제를 했다 취소하며 계좌의 상태를 확인했다.  25일인 월급 수령에 앞서서 남은 돈을 모조리 적금 계좌에 옮겨버린 탓에 내 ‘도전 신청’은 거기서 다시 하루 다음날로 미뤄졌다.

다음날은 순조로웠다, 모든 게. 출근해서 컴퓨터를 켠 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물론 타사의 보도 분석과 오늘의 발제.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전을 찔러 넣었다.

해외 달리기 대회 신청은 이번이 처음, 당첨돼 독일에 가게 된다면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 될테다. 겨우 며칠 스쳐 넘어간 쾰른과 뮌헨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독일은 정갈하고 조용한 밤을 가진 나라. 대개의 도시가 평지에 박힌 대국. 전범의 용서를 꾸준히 내놓고 자유를 황금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땅. 나는 그저 고성과 오래된 맥주로 추억을 적셨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길 바라며 버튼을 눌렀다.

당첨까지는 한 달 반이 걸렸다. 달리기 대회 신청조차 잊고 있을 기간이다. 그만큼 삶과 일이 빠르게 돌아갔다. 평창 올림픽 준비부터 불법촬영(몰카) 사태에 대한 관심과 문제제기가 시작될 시기, 부서 이동 문제와 업무에 대한 회의감이 계속되던 날들. 그리고 명절이 지나 현실감을 다시 막 찾을까 하던 찰나에 받은 이메일 “CONGRATULATIONS”.

잠시 생각을 놓친 순간 해가 바뀌어 싹이 돋는 3~4월이 되었고, 그제서야 나는 달리기 대회에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를 잊었다고 달리기를 멈춘 적 없다. 그렇지만 마라톤 경기와 달리기는 천지개벽의 차이였던 것을, 이미 몸으로 겪고서도 그에 대응해서 연습하지 못했던 것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내 사정 탓일 테다.

대학을 입학한 뒤 한 학기도 학업과 여타활동, 이를테면 동아리나 학교안팎 활동, 사업이나 연애를 쉬어본 적 없이 줄곧 이어가며 살았고, 휴학 한 번 해본 적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곧바로 일을 시작했고 다시 곧바로 런클럽을 만들어 운영, 그리고 대학원 입학까지 연결되는 열 몇 해에는 공백이 없었다. 송곳으로 찔러 낸 틈 몇 개는 여름이나 겨울 휴가, 그것도 급히 몰아쓰기.

그 모든 게, 직업을 제외한 일련의 상황이 2월에 끝나고 난 뒤 마감됐다. 몇 글자로 종료된 한 장章, 다음 신호는 내가 올려야 하는 빛인데도 등표로 향할 기운을 다 쓴 탓일지, 아니면 느긋한 것을 찾아서일지.

어느 틈까지 보여주어야 할까

절룩거리는 사람이 많은 백림의 월요일, 사람들은 어제의 영광을 무게로 기억하려는 듯 모두 무거운 쇳덩이가 달린 목걸이를 매고 다닌다. 차가운 그것을 꺼내 나도 조용히 목에 걸었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친해야 지인 아닌 친구가 될까. 어느 틈까지 보여주어야 할까. 속내를 숨기거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쉽게 재단되지 않아서 하나로 모아버렸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이란 것은 절박한 만큼 생을 여는 듯 하다.

어제 내가 그랬다.

옆 사람 토드에게 젤리를 나눠주었다. 로마 어디에 오면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고 있으니 목걸이를 가지고 오란다. 릴리의 할아버지에게 콜라는 얻어 마셨다. 손녀가 방금 지나갔다며, 힘을 내라고. 한국의 성 ‘김가’와 비슷한 킴이 내 허벅지를 마사지했다. 힘겨워서 다리가 덜덜 떨리는데 “너는 강하다”며 “기도하겠다”고 마사지 크림이 범벅인 손으로 내 손을 잡아쥐고 짧게나마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물론 그들과 따로 서울 용산 청파로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나 백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서울에 알고 지내는 사람보다 그의 얼굴이 더 각인될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인가. 이 글로 기억의 조각을 덧붙이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연이든 우연히든 ‘언제 한번 보자’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한번 본 이’라서 그러는지.

물론 안다. 이것은 사는동안 그렇게 쉽게 나눠버릴 수 없는 간극이라는 것을. 사람은 매순간 바뀌고, 매초 우리는 변명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찰리가 잠든 이 곳에서, 백림의 바람으로 쓴다.

마음을 더해준 덕연, 수진, 인선, 유희, 주아, 혜민, 다혜, 웅기, 지은, 석, 은선, 지연, 예진 그리고 세현에게 감사를. 노보, 진주, 혜린, 대희, 순양, 진경, 제임스에게 축복을.

나는 지금 백림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마지막이네요. 뒤에 있는 줄은 다음 게이트인 에어프랑스 타는 줄이거든요. 혹시 섞일까 봐 직원들이 소리 지르고 다녔어요.”

10시 40분 비행기인 줄 알고 느긋하게 줄에 서서 제주도에 사는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큰일 날 뻔한 오전, 눈 떠보니 나는 어느새 ‘호수의 땅’ 수오미에 있다. 중국 텐진과 베이징, 몽골 울란바토르와 바이칼호를 낀 러시아 이르쿠츠크, 북극해가 코앞인 노비우렌고이, 백해와 마주한 라르한겔스트를 지나 발트해. 백림까지는 앞으로 한 시간. 다시 독일을 찾기까지 11년이 걸렸다.

2007년, 백림의 추억은 거기에 살고 있다. 따뜻해져서, 호기 있게 사랑이나 하고 있던 나는 친구 A, 선배 B와 함께 호기롭게 부산 금정구 장전동의 한 여행사를 찾아 숙소와 비행편을 예약했다. 수학능력검정시험 ‘물이 덜 빠져’있던 나는 사실 구라파에 대한 동경을 달리 품지 않았다. 지구가 작아져서, 이제 집에서도 책이나 영화, 온라인으로 구라파에 대해 ‘그렇게 찬란하다는 문명의 젖줄’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며 냉소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

오히려 걱정은 돈이었다. 엄마의, 사실 아빠의 돈과 내 노동사입의 날을 빌어 한 달을 보내는데, 10년이 지나 지금 내가 벌고 있는 돈으로도 감당 못할 소비에 천착해야 한다는 사실은 수능에 실패하고 학점조차 수렁에 빠진 나에게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다면 좋았을까. 그해 나는 아르바이트로 ‘나름’ 돈을 열심히 벌었고, 동생과 두 살 터울인 탓에 그해에는 대학 등록금이 한 명치만 필요했다. 엄마와 아빠도 가본 적 없는 구라파다. 엄마는 감사하게도 내 통장에 돈을 넣어줬다.

그렇게 한 달 반을 집 떠난 삶을 살았다. 가장 사진 실력이 많이 늘었던 때 호기롭게 돌아다닌 섬과 대륙 곳곳은, 사실 그쯤 유행하던 이십 몇 개 나라 일주같은 유행의 코스 일부였지만 행복과 좌절은 곳곳 도처에 있었다. 한없이 평온함에 가까워지던 로마, 여전히 골목 하나까지 기억하는 니스, 공창을 처음 보고 놀랐다가 성욕이 전혀 생기지 않아 더 놀란 암스테르담.

백림은 중간에 있었다. 쾰른과 뮌헨, 때마침 지역 축제까지 겪으면서 “Original or Black”만 고르라면서 1ℓ들이 맥주잔을 권하던 아저씨들은 온갖 소매치기에 겁을 먹던 우리의 안정제가 돼줬고, 살찌는 소리가 들릴 지경일 때도 긴장과 함께 허리띠도 풀어버린 탓인지 우리는 소시지를 삼키고 마음을 먹었다.

첫 유럽 여행은, 그러나 웬일인지 나에게 회의감만 선물했다. 모나리자를 보고 에펠탑 앞에서 김동률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어떤 게 괜한 욕심이고 어떤 게 필요충분에 의한 것인지 고민이 깊었던 것이다.

그 생각은 관광을 수업으로 들으며 오히려 커졌다. 공항은 권력이고 항공과 노선은 정치였고 그렇게 생긴 부대 산업은 경제 그리고 이것들이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강력해지는 탓에 어떤 이는 고향의 고유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수업을 들으며, 한참 오랫동안 항공 노선을 뒤지기도 했다.

호기심, 사유가 인간을 여기까지 오게 했다지만, 질문에 대한 질문만 반복하던 나는 그후 한참이나 오랜 기간 여행을 피했다. 피했다기에는 너무 많은 곳을 다녔지만 특별한 장소에 대해서 특별한 기분을 느끼는 것을 의도적으로 삼가고 있었다. 굳이 어딘가를 다녀왔다며 자랑하듯 읊는 것도 마찬가지로.

여러 이유로 1년을 준비한 백림행이 좌절되게 생긴 적이 3번이나 된다. 마지막 비행기표를 취소할 때는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흘 밤낮을 고민하고 백림행을 선택하고서 빈 통장 잔고만큼은 아니겠지만 웃음이 났다. 다시 결국 필요충분 때문에 여행하게 되는 것일까. ‘그냥 가보고 싶은 곳’이란 여전히 없어서, 이번에는 조금 두근대면서 떠날 수 있을까 했지만, 여전히 아직은.

그래도 조금 기대 된다. 조금씩이라도 낭만을 되찾을 이유가 생긴 탓인지, 아니면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서일지.

늑대 울음소리같은 브레이크 소음이 귀를 덮고 있다. 나는 지금 백림에 도착했다.

안녕한 그 이상, 寧越

열 개의 경치가 있다는 도시, 군郡 안에 한반도를 품었다는 이야기, 오래된 전설이 쌓인 밤과 산의 고향, 오래 전에는 뗏목이 도시 한가운데를 동강동강 지나갔고 그 위에 탄 사람들은 한양부터 산골까지 품었다. 이제는 이야기가 쌓여 그 품을 헤아리려 사람들은 천문대에서 낙하산을 달고 그 길을 다시 달리는, 그런 곳에 다녀왔다.

편의점에서 멀어지자 숲이 말을 시작한다. 아마 벌레가 걸어다니는 소리나 풀잎이 몸 부딪히는 이야기, 아니면 꽃잎이 자라는 울음. 하늘은 시계 방향으로 돌고 아무리 봐도 건물은 없고 어둠이 눈에 익자 조금씩 보이는 산의 어깨. 잊고 지냈던 기억이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너무 쉽게 흘리고 있는 땀에 대해서.

외할머니 고향은 섬, 배가 뜨는 섬에서 다시 고깃배를 얻어타고 들어가는 작은 마음 꼭대기에는 학교가 있었다. 전교생이 몇 명 쯤 됐을까. 거기서 하던 철봉 놀이, 달려내려 가며 보던 밭과, 멀리서 돌아오는 배에 실려있던 것은 사실 기억나지 않는 어종의 물고기. 마당에는 전선같이 푸른 색의 건조대가 있었고 그 위로 올라가는 생선, 아저씨들은 봄에 여름처럼 땀을 흘렸다. 그렇게 먹은 생선구이와 찜은 짰다. 나는 그 후로도 바다가 소금 맛인 게 그저 결국 몇 개의 화학작용, 이를테면 염화나트륨과 화산 때문 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믿어버리면 사람은 너무 시시한 물건이 되니까.

외할머니 고향에 다녀오는 길은, 다시 고깃배였다. 물도 아닌데 뭍과 떨어지니 바람에서 짠 내가 났다. 이 공기도 바다만큼 오랜 세월을 지냈겠지. 바다의 친구이면서 또 오랜 목격자로서, 이 틈에 흘렀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유유상종은 멀고 먼 곳에서부터 온 단어이니까.

그런 향기가 났다, 영월에서. 단종은 여기에 박혔다고 사람들이 말해줬지만, 뜨거운 빛에 사방이 산인 고장에서 돌고 돌았을 산 냄새. 바꿔 말하면 어디서나 보이는 동강을 보며 자란 사람들과 모여든 태백과 치악, 소백의 일상이 마주하는 빛. 그들의 오일장에는 그런 구경이 넘쳐났고,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사람 중요한지 안다’는 하나의 신앙.

허리에는 긴 굴이 났고, 마을 가운데에는 석탄인지 어떤 연료인지 모를 것을 실은 기차가 달려간다. 이제는 서울로 대전으로 가기 편해졌지만, 여전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 있는 그런안녕한 이들의 고향.

만곡 이십 리, 이 도시가 나가는 법

겨우 이십 리, 8km를 뛰고 집에 왔다. 이 글은 이성과 무의식을 기술할 것이다. 달리며 느낀 것에 대해서니까.

만곡, 끄룽텝에서 이틀째, 길을 달렸다. 올해 중순으로 다가선 베를린 달리기를 위한 연습 자세이기도 하지만 흥건한 땀이 그리워지는 날씨 탓도 있어 가벼운 차림에 물 한 병을 허리춤에 차고 도로 옆에 섰다. 운동화 뒤꿈치 쪽 밑창은 어제 떨어져 나갔다. 영하의 날씨에 눈밭을 거닐다 갑작스레 달궈진 아스팔트를 만났기 때문일까. 추진력 떨어지는 걸음으로 하나씩 앞으로 나갔다.

언제나처럼 골목을 다니기로 했다. 뛰던 팀과 좋아하는 클럽에 열심이던 내가함께 달리는 서울RUNSEOUL’을 처음 열었던 까닭은 사는 터전에서 나와 가깝게 사는 이들과 동네를 끊기지 않고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첫 코스부터 1년여 동안 바뀌지 않았던 원칙은 시작점에서 멈추지 않는 자리, 이를테면 횡단보도를 건너느라 멈추는 것은 없었다, 에서 함께할 것이었다. 그 후로 사람의 다소에 따라, 또 장長의 변경에 따라 원칙은 구악舊惡이 됐지만 내 마음속에는 길과 사람, 흐름이 여전히 존재했다. 또 하나 주저하지 않을 것, 그건 외로움이나 두려움으로부터의 거리를 나타내는 구절이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것, 하지 말 것에 대한 나름의 노력이 밴 말이었다.

달린다. 언제나처럼 끊기지 않는 골목을 두려움이 허하는 순간까지 깊게 들어갔다 숨통이 달리려 하면 어서 꽁무니를 내빼길 반복한다. 달리던 방콕의 골목 언저리에 화려한 번화가가 나타난다. 숙소에서 겨우 십 오분 거리. 힐을 신고 서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음악 소리가 크다. 커다란 간판에 성인구역AdultZone이 달렸다. , 하고 탄성을 내지를 틈도 없이 누군가 앞에서 나를 부른다. 외국인에 처음 보는 얼굴. 깜짝 놀라 달리다 멈추니 와서 손목을 잡으려 해 짐작으로 깨닫고 얼른 그곳을 빠져 나왔다.

돌아와 방금 찾아보니 거기는나나플라자NanaPlaza’라는 밤문화나 유흥가라는 껍데기가 있는 성매매 접선지였다. 외국인만 들어갈 수 있고, 짧게 정분 나눌 이를 구하는 곳이라 했다. 큰 거리와 맞닿아 있고 앞에는 경찰서도 있단다. 경찰서가 있어서 소름이 돋는 것인지 집과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어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이런 문화가 있는 나라인 것에 대해 내가 공부하지 못한 채 흘러온 것은 아닌지 자조와 답답함이 몰려와 잠깐 동안 컴퓨터 앞에서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그 나나플라자를 지나 길 끝까지 갔다. 복잡하고 불편한 마음을 던져버리고 싶어 39km 표지판을 본 마라톤 참가자의 마음을 끌어올렸다. 어둡고 컴컴한 길을 지나 호텔에 물이나 침대보 세탁물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들이 길에 즐비했다. 고급 빌라를 지나니 길 끝에는 담배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돈을 만드는 웅장한 정문에 멈춰서 다시 왔던 길로 등을 돌려야 했다. 겁이 났다. ‘주저하지 않기 위해달려왔는데 주저하게 된다. 다른 골목으로 빠져나와그놈의 나나가 아닌 쪽으로 대로를 향할 수 있는지 이면도로 옆을 세차례나 훑었지만 막다른 골목만 있어 나는 이어폰의 음량을 더 키워 그 길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다시 생각하니나나는 내 친구의 개, 코카스파니엘의 이름이었다. 예쁜 나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참 개같은 상황이었다.

어제는 카오산 길에서 국립경기장National Stadium역까지 걸어왔다. 여행은 주로 걸어서 해온 탓에 4,5km 거리는 쉽게도 오갔다. 카오산 길을 상징하는 ‘합장하는 로날드 맥도날드’는 사실 방콕의 어떤 맥도날드에서라도 볼 수 있다거나 오토바이 택시나 삼륜 오토바이 택시 ‘툭툭’이 따라오면서 목적지를 물으며 가격 흥정을 한다거나 사람 팔뚝만 한 쥐가 도시를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두 다리로 타지를 보기 때문에 알 수 있던 것들인데 그 10리 길을 걸으며 내린 어둠 곁에서 내게 인사를 건네거나 메신저 ID를 묻던 이들의 호의는 사실 진의도 아니었으며 또 ‘무료 웃음’도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발을 이어 몇 개의 골목을 뛰어보려 애쓰다 결국 꽉 막힌 마음을 잡고 숙소에 왔다. 겨우 8km, 이십 리. 철인경기를 뛰고 마라톤을 달릴 때 체력을 끌어올리려면 몸을 단련해야겠다 생각하다가 마음도 근육이 약해진 것 아닌지 고민에 잠시 들었다. 자연스러운 게 좋다 생각해왔다. 마음은 약해질 순간이기에 약해진 것이고, 울고 싶으면 언제든 펑펑 울어도 되는 것이었다. 이들의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런 자조는 내 딴이나 맞지 이들의 문화를 모르는 것, 모르면서 내 고정된 시야로 이들의 문화나 사회를 생각하려 했던 것, 이 혼란을 인제야 느끼는 것은 조금 더 계속될 테다. 이 도시는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가, 궁금해지기 주저해졌다. 그렇게 ‘주저하지 말 것’을 3년이나 외쳤던 난데 그게 ‘내가 나였나’하는 마음마저 다시 움트고 있다.

가장 멀리까지 간 에라완 사원 앞에서 본 나나플라자 옆에는 ‘더 랜드마크The LandMark’라는 빌딩이 높게 서 있었다. 달리며 반복해 듣던 노래는 얼마 전 삶을 뒤로한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가수 이하이에게 준 노래 ‘한숨’이었다.

숨을 크게 쉬어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질 때까지. 숨을 더 뱉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느껴질 때까지. 숨이 벅차 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