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림의 길에서, 1편 1장 백림 방향

젖꼭지와 발등 위에 꽃이 피었다. 피가 흐르다 멈춘 딱지다. 가까운 기억이 몸에 남았다. 가까운 날이라고 자세히 기억남는 것은 아닌데 독일의, 백림은 서울까지 이어진다. 짧고 강렬한 닷새가 서른 둘 짧은 내 삶에 적혔다.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더 가기 전에 그를 종이와 공간에 남겨 본다.

이 일을 가진 뒤로 매년 여름은 가까운 곳에서 보냈다. 저금과 적금을 열심히 하면서 대학원 학비도 한 해 1200만원 이상 내는 삶에 익숙해진 탓인지 가까운 나라에서 도피의 목마름을 채웠다. 그것은 대개 일본이나 홍콩, 멀어야 베트남, 태국의 만곡에서 그쳤고 그 이상 샘은 시샘만 했던 것이다.

석사를 받아들게 될 것을 확신했던 탓일까, 아니면 무언가 도전해야겠다는 생각 탓일까. 지난 2017년 10월 18일 밤 알게 된 백림의 달리기 대회를 놓고 나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고서 신청을 눌렀다. 그리고 곧바로 좌절했다. 의지보다 부족했던 돈 23만원이 없었던 것이다.

백림의 대회는 선정된 이에게 최종 결제해 돈을 거둬가지만 앞서 결제를 했다 취소하며 계좌의 상태를 확인했다.  25일인 월급 수령에 앞서서 남은 돈을 모조리 적금 계좌에 옮겨버린 탓에 내 ‘도전 신청’은 거기서 다시 하루 다음날로 미뤄졌다.

다음날은 순조로웠다, 모든 게. 출근해서 컴퓨터를 켠 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물론 타사의 보도 분석과 오늘의 발제.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전을 찔러 넣었다.

해외 달리기 대회 신청은 이번이 처음, 당첨돼 독일에 가게 된다면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 될테다. 겨우 며칠 스쳐 넘어간 쾰른과 뮌헨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독일은 정갈하고 조용한 밤을 가진 나라. 대개의 도시가 평지에 박힌 대국. 전범의 용서를 꾸준히 내놓고 자유를 황금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땅. 나는 그저 고성과 오래된 맥주로 추억을 적셨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길 바라며 버튼을 눌렀다.

당첨까지는 한 달 반이 걸렸다. 달리기 대회 신청조차 잊고 있을 기간이다. 그만큼 삶과 일이 빠르게 돌아갔다. 평창 올림픽 준비부터 불법촬영(몰카) 사태에 대한 관심과 문제제기가 시작될 시기, 부서 이동 문제와 업무에 대한 회의감이 계속되던 날들. 그리고 명절이 지나 현실감을 다시 막 찾을까 하던 찰나에 받은 이메일 “CONGRATULATIONS”.

잠시 생각을 놓친 순간 해가 바뀌어 싹이 돋는 3~4월이 되었고, 그제서야 나는 달리기 대회에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를 잊었다고 달리기를 멈춘 적 없다. 그렇지만 마라톤 경기와 달리기는 천지개벽의 차이였던 것을, 이미 몸으로 겪고서도 그에 대응해서 연습하지 못했던 것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내 사정 탓일 테다.

대학을 입학한 뒤 한 학기도 학업과 여타활동, 이를테면 동아리나 학교안팎 활동, 사업이나 연애를 쉬어본 적 없이 줄곧 이어가며 살았고, 휴학 한 번 해본 적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곧바로 일을 시작했고 다시 곧바로 런클럽을 만들어 운영, 그리고 대학원 입학까지 연결되는 열 몇 해에는 공백이 없었다. 송곳으로 찔러 낸 틈 몇 개는 여름이나 겨울 휴가, 그것도 급히 몰아쓰기.

그 모든 게, 직업을 제외한 일련의 상황이 2월에 끝나고 난 뒤 마감됐다. 몇 글자로 종료된 한 장章, 다음 신호는 내가 올려야 하는 빛인데도 등표로 향할 기운을 다 쓴 탓일지, 아니면 느긋한 것을 찾아서일지.

어느 틈까지 보여주어야 할까

절룩거리는 사람이 많은 백림의 월요일, 사람들은 어제의 영광을 무게로 기억하려는 듯 모두 무거운 쇳덩이가 달린 목걸이를 매고 다닌다. 차가운 그것을 꺼내 나도 조용히 목에 걸었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친해야 지인 아닌 친구가 될까. 어느 틈까지 보여주어야 할까. 속내를 숨기거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쉽게 재단되지 않아서 하나로 모아버렸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이란 것은 절박한 만큼 생을 여는 듯 하다.

어제 내가 그랬다.

옆 사람 토드에게 젤리를 나눠주었다. 로마 어디에 오면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고 있으니 목걸이를 가지고 오란다. 릴리의 할아버지에게 콜라는 얻어 마셨다. 손녀가 방금 지나갔다며, 힘을 내라고. 한국의 성 ‘김가’와 비슷한 킴이 내 허벅지를 마사지했다. 힘겨워서 다리가 덜덜 떨리는데 “너는 강하다”며 “기도하겠다”고 마사지 크림이 범벅인 손으로 내 손을 잡아쥐고 짧게나마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물론 그들과 따로 서울 용산 청파로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나 백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서울에 알고 지내는 사람보다 그의 얼굴이 더 각인될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인가. 이 글로 기억의 조각을 덧붙이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연이든 우연히든 ‘언제 한번 보자’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한번 본 이’라서 그러는지.

물론 안다. 이것은 사는동안 그렇게 쉽게 나눠버릴 수 없는 간극이라는 것을. 사람은 매순간 바뀌고, 매초 우리는 변명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찰리가 잠든 이 곳에서, 백림의 바람으로 쓴다.

마음을 더해준 덕연, 수진, 인선, 유희, 주아, 혜민, 다혜, 웅기, 지은, 석, 은선, 지연, 예진 그리고 세현에게 감사를. 노보, 진주, 혜린, 대희, 순양, 진경, 제임스에게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