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놀라운 성취를 바라보다가

재개발 투쟁을 벌이는 낡고 후미진, 상습 침수지역의 반지하 방값이 쌀까, 아니면 산 정상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고바위에 있는 집 삯이 낮을까. 어떤 사람도 쉽게 답할 수 없어서 찾아볼 때면 그마저도 가격이 쉽지 않아 놀랄 때가 있다. 가지지도 못할 서울 하늘이 아래라 그런 적도 있었고 바로 옆이 느닷없이 주민센터부지로 선정되면서, 골목 아래에서 하늘을 보고 굴뚝 위에서 야경을 보던 사람들은 옆으로 옆으로 옮겨갔다.

집의 이름은 자꾸 변했다. 고시원보다 좁은 한 평 반, 세련된 말로 사 점 구 제곱미터 공간은 고시’텔’이 됐고 어떤 방 한 칸, 속칭 ‘원룸’은 부동산 등기에는 고시원이 돼 취사를 할 수 없어서 단속이 뜨면 가스레인지나 전기레인지, 속칭 ‘인덕션’을 서랍 아래로 가려야 했다. 공인중개업소들은 그런 집을 자기 옆집 아들에게 팔지 않았다. 안면이 없는 남에게만 웃으면서 그런 형편을 내밀었다. 어느 사람이 지독히 돈을 모으는 탓은 부모가 가진 집과 같이, 아주 좁아서 웅크리더라도 몸을 붙일 수 있는 욕조 한 개 놓고 싶어서였다. 그 남자의 스물 세 살 소원은 목욕탕 가서 돈을 내고 남에게 등의 때를 맡기는 것이었다.

그런 순간이 되면 그 치에게 더는 철학과 민주주의, 평화나 페미니즘, 심지어 부모나 남의 재산 따위까지도 자신의 삶에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들이 아니게 됐다. 시간제 노동, 아르바이트만 해도 백 수십만 원이 통장에 생기지 않느냐는 지지부진한 말을 늘어놓는 정치인에게의 투표도 별 게 아닌 아침이 열리는 것이다.

위로 가는 계단은 높은 사회에도 낮은 골목에도 있었다. 값이 나가는 서울 종로 북악산 자락의 어느 집과 서울 어느 구 어느 동의 산자락 달동네는 시계가 좋은 날 서로 마주볼 일 있을지 모르나 삶의 계단 앞에서는 달랐으니까, 다를테니까.

야자나무의 다른 이름인 종려나무는 한국의 남해나 제주도, 동남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일테지만, 그 나뭇가지가 황금으로 돼 있든지 은으로 돼 있든지 어떤 이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눈 앞에 종려 열매 모양의 빵이 있다면 좋아했을 테다.

어떤 사람의 놀라운 성취를 바라보다가 괜히 심술 궂게 오래된 희망을 꺼내 생각해봤다. 우리는 어떤 사회 속에서 각자의 냄새나 천성 아니면 교육에서 죽어가는가, 굳이 가보지 못한 제곱미터 당 수천만 원의 집에 거짓 복수심만 키우는 게 아니라.

조지 오웰의 따라지 인생·위건부두를 읽고

2012년, 저는 3달 사이 서울 내 주거에 대한 많은 것을 겪었습니다. 인턴 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에 집을 얻으려다, 그 기간이 불분명해 들어간 구석은 3.3㎡가 될까 말까하는 좁은 ‘리빙텔’이었습니다. 말이 ‘사는 호텔 Living Hotel’이지 사실 무척 좁은 고시원이었던 그곳은 창문 없는 방 38만원, 창문 있는 방 40만원짜리 삶들의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아예 이름이 고시원으로 붙은 곳에서도 딱 1달 살아봤지만, 서울의 고시원은 이름으로 사기치고 또 창문을 코와 바꾸는, 코를 베는 것처럼, 곳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해 가을이었습니다.

처음 1달 반을 창문 없는 방에서 살았습니다. 정신이 나가버리겠더군요. 일하는 곳은 언론사에, 깔끔한 세미정장을 입고 다니는데 집은 닭장같은 곳이니 내외간 충격은 물론, 바다를 보며 살던 사람이 창문도 없으니, 감옥보다 더하다 싶어서 텔레비전을 보며 이력서를 끄적이고, 그 돈마저 아끼려고 라면과 밥만 먹어 살이 오르는 날이었지요. 그러다 결국 창문 있는 방으로 옮겼습니다.

어차피 손바닥만한 창이었지만 그 창이 생기니 이 내 가슴에 창이 난듯 속이 뻥 뚫리더군요. 그러면서 오히려 답답한 방을 겪었던 것이 감사하더군요. 좋은 것을 먼저 겪거나, 창문 없는 방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아니 지금 생각하면 ‘리빙텔’이 고시원보다 못하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또 그저 듣기만 했던 사람은 그것이 과장인지 아니면 왜곡인지 알 겨를이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언론의 길을 가려 생각했던 어린시절 신문이 떠오릅니다. 패기 넘치는, 당시 수습기자였던 저의 많은 선배는 무척 험하거나 고된 삶을 체험으로 풀어내 르포르타주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편의점이나 공장에서의 일을 경험한 것과 시체 영안소의 기록도 본 게 떠오릅니다. 그래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글은 서울역 노숙자로 살아가며 나눈 대화였습니다. 어떤 언론사 어떤 기자의 체험과 기록이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푼 이야기여서 더 강렬한 섬광이 남은 것 같습니다.

겪지 않고, 옆에서 단어를 주워서 쓴 글과 실제 체험이 들어간 글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오웰의 ‘따라지 이야기’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에릭 블레어, 오웰이 실제 겪고 쓴 글로, 읽자마자 힘을 느꼈습니다. 강하게 감동을 했습니다. 물론 굳이 끼운 ‘비판적 참견’도 내놓을 수 있겠지만요.

우선 인물 묘사가 탁월합니다. 대화에서 나타나는 내용, ‘위건 부두 가는 길’(위건부두)의 탄광 노동자의 대화나 모습에서 나타나는 특색을 잘 묘사했고,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따라지 인생)의 여관 주인, 함께 떠도는 이들과 구두수선공, 미장이, 석공, 잡역부, 학생, 매춘부, 넝마주이의 모습은 (물론 민족이 달라 완벽히 묘사되지 않지만) 눈에 생생할 정도입니다. 또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 지역적 특징을 설명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나라 남·북부도 여행하거나 최근 유행하는 ‘한 도시 한 달 살기’를 하면 이 정도 묘사하며 특징을 잡아낼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위건부두의 석탄 채굴 후 나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따라지 인생의 대규모 숙소 이야기는 세밀하게 설명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웰의 이런 묘사에는 2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우선 뒤로 갈수록 묘사 횟수나 설명이 점점 약해지고 횟수도 줄어든다는 겁니다. 특히 따라지인생의 후반부 인물들은 거의 설명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묘사를 독자 소구를 위해 쓰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사람에 대해 좀더 강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가 겪은 사람의 친밀도 차이가 그만큼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지곤 합니다.

우리의 ‘아주 위대한 지식인’ 오웰은 따라지 인생과 위건 부두를 쓰면서 현상 나열에 그치지 않습니다. 직접 인용하자면 “나는 노동계급을 충분히 관찰했기에 그들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집에 가면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위건부두 159p) 그는 글에 당대 사회적 현상 등을 함께 녹였습니다. 위건부두의 ‘전후 재건축’, ‘남북간 공업화 차이 및 발전상 차이와 비판’, 따라지인생의 “떠돌이들의 인력, 보건, 노동력 관련 문제 분석 및 해결책 제시가 여기 해당한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자의 ‘개입’은 기자가 어떤 글감을 땔감으로 선택 하느냐 부터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이 부분에서, 이를 ‘르포르타주’로 낸 오웰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를 집어넣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물론 더 궁금한 것은 책의 ‘타깃’입니다. 위건부두 기준, 노동자의 이야기와 섬세한 묘사에 맑시즘과 경제사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어떤 대중에게 위건의 상황을 전달 혹은 이야기하려던 것일지요. 심지어 위건부두 2부에서 오웰은 (1부에서 그토록 탄광 노동자의 삶에 대해 두텁게 써두고선) 아예 대놓고 “나는 노동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며 따라지 인생 시작을 서술하기도 했지만 말이죠.

사실 그는 어쩌면 ‘비이성적인 인류’에 대해 사실 그가 겪은 일련의 고난과 (이 2가지 르포르타주를 완성하는데 체험한) 상황을 ‘사실 거의 다 피해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에 대한 지식인 수준의 해결책을 내놓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다른 책 ‘더 저널리스트’ 인용) 기자 혹의 지식인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럼 3가지의 질문을 남기고 저는 글을 맺겠습니다. 저널리스트가 르포르타주를 쓸 때, 르포르타주 완성을 위해 불가피한 개입은 당사자에게 영향을 줄텐데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요? 오웰이 지금 한국에 태어난다면 그는 어떤 르포르타주 주제를 택할 수 있을까요? 통상 언론은 해결책이나 견해를 나타낼 때 전문가의 입을 빌립니다. 당사자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학계의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에 대해 오웰은 자신이 직접 해결을 내놨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폭염에도, 고민이 잘 닫히길 바랍니다.

셜록 박상규 기자의 ‘합리적 의심, 보편적 상식을 의심하라’

살인범이 있다. 범죄심리분석관이 나와 살인범의 심리에 나와서 이야기했다. 사람이 프로파일링으로, 범죄심리분석가라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건이 벌어진 지 하루도 되지 않았고, 사건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도 나오지 않았고, 여자를 만나지도 않았는데 범죄심리를 말할 수 있느낙. 최소한 전문가라고 하면 면담을 하던가, 면담할 수 없으면 사건 기록이라도 살펴본 후에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수십만명이 본 TV에서 이를 말할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김광석 자살 역시, 팬들과 가족은 “김광석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보통의 가족들은 내 식구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모르는 것이다. 서해순시를 살인범처럼 몰아갔던 것, 인격 살인한 것이다.

정보를 가장한 폭력, 누구든 오해하고 오해받을 수 있는데 그게 살인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큰일 아닌가. 주의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사건을 보도하다 보면, 큰 사건이다 보면 흥분하게 된다. 언론인들이 사실확인 안된 상태에서 증폭되기도 한다. 지엽적 문제가 크게 확대되기도 한다. 살인, 사건, 사고 보도할 때는, 모든 것은 속보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살인범의 얼굴 공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살인범 인권도 보장해야 하는가. 인권을 보장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살인범이 예뻐서 나온 게 아니다. 진실에 접근하는 수단이다.

공권력에 사건을 맡기고 그것을 검증하는 게 기자의 역할 아닌가. 우리는 절대 경찰과 한편이 아니다. 경찰과 한편이라 생각하는 순간같이 오해에 빠질 수도 있다. 사건 보도하다 보면 그런 오해에 빠질 수 있다.

사건 수사를 해보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수사를 한다 하더라도 게임이 안 되는 게, 군대, 공무원, 경찰 순서로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조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수 대 일로 하는 것. 공평한 게임의 규칙을 ‘그나마’ 보장하는 게 힘의 균등함에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거기서 기자가 경찰 편을 들어버리면 거대한 인권 침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 검증할 수 있는 여력이, 기자들에게 사실 없다. 혈흔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 혈흔 얻기도 힘들다.

살인 사건은 보통 못 배운 사람이 저지른다. 그 사람들이 수사팀과 어떡해. 과학수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봐야 한다. 합리적 의심과 보편적 상식에 맞춰서 사건을 바라보자. 사실 굉장히 폭력적으로 적용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 4월호 ‘패럴림픽 취재기’

무거운 돌 하나를 굴린다. 얼음판 위로 미끄러져 갈 길이 정해진 돌 하나가 멀고 긴 여정을 떠난다. 과녁 중심에 닿으려다 다른 돌에 맞아 휘기도 하고, 실수로 엄한 곳에 서기도 한다. 손에서 떠난 돌 하나는, 그러나 결국 전 국민 유행어 ‘영미’를 남기고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은메달을 남겼다. 감동의 대서사시를 선물한 대한민국 여자 컬링 국가대표 ‘팀 킴’은 스피드 스케이팅 김동성 선수의 ‘분노의 질주’ 이후 대한민국 동계 종목 역사상 최대 유행어를 남겼다.

 

언론사에 있어 자원은 기자다. 기자 한 명을 굴릴 인건비와 노트북 그 이상 크게 들어가는 건 없기에 기자를 어디에 배치하느냐 하는 것은 언론사의 사론 및 언론의 사명과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 때문에 현장에서 본,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기자 상주 숫자 차이가 이를 대변하고 있었다.

 

패럴림픽을 취재했던 이들은 그만큼 큰 감동과 보도에 대한 고뇌를 이어왔으리라 본다. 이 고민이, 이 충격이 당장 시청률이나 PV(Page View, 기사 조회수)에 집착해 1점 내는데 그치지 않고 긴 시간 숙고 끝에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롱가드런백(컬링 용어로 앞의 스톤을 때려 뒤에 있는 스톤을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이 되길 바라본다. 기자들의 패럴림픽 취재와 보도 고민, 무한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원문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가상화폐 단상, 지극한 개인 관점

ICT부도 아닌데, 주변에서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위시한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묻는다. 상승장에도 잃을 수 있고, 하락장에서도 벌 수 있고 그 한도가 사실상 무제한이다 보니 경제성장률이 정체되고 일자리는 제한되며 초고령사회에 다가서는 어려운 경제여건 상황에서 인기가 높아지나 보다.

재테크의재財에 해당하는지 많은 논란이 있지만 어쨌거나 거래돼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비트코인은 이를 처음 인지한 1년 전과 비교해 가격이 40배 가량 올랐다. 이걸 4,000%라고 읽으면 엄청나 보이긴 하다. 사실그때 투자해뒀으면 지금 어찌 됐을 것이다는 말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우선 가상화폐를 인지해야 하고 이에 관해 관심을 둬야 하며 다시 거기에 재화를 쏟게 결심한 뒤 이를 직접 실행하는 과정은 시장경제에서 무척 지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냥 넣었으면 되지라는 말은 더 억지에 가깝다. 차라리지금 열린 24시간 무제한 거래소가 반갑다가 더 솔직한 표현일 테다.

가상화폐 종류 역시 지난해 100개에서 200 개에 불과하던 가상화폐 종류는 2017 12 13 현재 코인마켓캡(coinmarketcap) 기준 1,343개로 6배나 늘었다. 여기에 매일 쏟아져나오는 ICO(신규 가상화폐공개, Initial Coin Offering) 포함하면 얼마 남지 않은 연말까지 가상화폐는 1,500개를 돌파할 예정이다.

어떤 게시판에서 고등학생이 기억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다른 커뮤니티에는 기천만 원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돈다. 주변에서 실제로 돈을 벌었다거나, 재산의 일종으로 보유한다는 이가 생기고 는다.

그러나 주의는 해도 해도 되는 그런 것 아닌가. 수천 년 전기우에서 이미 시작됐듯 인간 마음은 벌 때와 잃을 때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 테다. 신규 ICO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는 것이나 소위상장 폐지되는 가상화폐 숫자도 적지 않다는 걸 사람들은 충분히 알지 못한다. 주식시장은 정리매매라는 형태로 수일간의 틈을 주거나 공시나 불성실공시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가상화폐 시장은전 세계 1등 암호화폐 거래소를 슬로건으로 건 빗썸의 최대주주나 대표이사도,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도 충분한 답을 할 수 없을 거다. 이를테면 2천만 원을 훌쩍 넘은 비트코인이 지갑에서 갑자기 인출되거나상장 폐지수순을 밟아서 0원이 된다면 책임은 모두 거래소가 질 수 있을까. ‘통화로 인정받지 못한 그 어떤 가상화폐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시 가격을 모두 보상할 수 있을까. ‘선례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대답조차 할 수 없다. 대답, 누가 할 건데?

최근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시피비트코인 플래티넘 사기 사태는 아주 잠시나마 가상화폐 시장를 혼돈하게 했다. 일각에서 ’50조 원이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우스갯소리로가상화폐는 사기와 해킹 전쟁으로 주저앉을 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모두 옳거나, 모두 그르다. 2009년 나카모토 사카시가 만든 것은세상에 아예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건 조화다. 그간 화폐 기술 중 슈퍼컴퓨팅이 아니며, 화폐 발행권이 있는각국의 한국은행격 은행에서 찍지 않으며, 누구나 캐지(발행하지) 못했던 것.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상화폐 뿐만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 혹은 그 기술이 나온 계기, 또 그 기술은 앞으로 또 어디에 사용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인터넷 강국인터넷 속도 강국이 돼서는 안될 거다. 구글(Google)의 알파고(AlphaGO)나 아마존(Amazon)의 배송 인공지능 기술, 넷플릭스(Netflix)의 클라우드 데이터 기술 등은 투자비용이 부족해서, 시장이 작아서, 정부의 관심이 그곳에 비해 덜해서 우리에게 없는 것만은 아닐 테다. 기회는 왔고 고민도 시작됐다.

, 왜 한국이 가상화폐에 빠졌는가에 대한 이야기 중취업이 어려워서, 취업해도 월급이 적고 월세는 비싸며 매매는 꿈도 못 꿔서라는 취지의 댓글을 봤다. 완벽한 거짓이 아니어서 씁쓸하기는 했다. 나조차 집주인의 관리비 연체, 단 며칠 늦게 낼 때도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강철로 된 숲에 내린 피냄새 비, 영화 강철비 시사 후기

아랫글에는 주요 부분에 대한 내용 누설이 없습니다.

또 원작 만화를 읽지 않았습니다.

두 남자가 있다. 두 조국이 있다. 두 가족이 있고 두 원수(남한의 元首와 북한의 元帥), 두 딸 그리고 두 개의 통일이 있다. 가운데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선, 역사와 의리 또 욕심으로 그은 분열이 있다.

남자는 음악에 맞춰 몸을 세차게 흔들며 웃다 울다 감정표현에 비교적 자유롭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으나 강대국 틈바구니 살아남은 사천 년짜리 유전자는 그를 영화 속에 던져 역사를 끌고 가게 만들었다. 신숙주가 일본을 토벌하고 여진을 멸했듯 그는 집을 지켜간다. 밝을 철에 집 우, 철우가 그의 이름이듯이.

다른 이가 멀찌감치 서 있다. 변화 없는 표정을 쥔 건 단단한 입 모양, 눈빛은 사정없이 흔들리다장군님이름에 몸이  발기 때 성기처럼 굳어버린 이. 그의 감정 역시 쇠와 같다. 그 감정을 만든 게 무얼까. 사상교육 혹은 가족에 대한 사랑 아니면 군신유의의 오래된 유적 같은 유전자. 쇠 철과 동무 우를 입은 철우, 또 다른 철우.

이 이야기는 두 철우를 내세워 써보는, 서울 올림픽 이후 서른 해짜리 이즘(ism)의 대결이다. 누구 편을 들 것인가. . 그편을 들면 내가 얻는 이득이 뭐길래. 그 이득은 누구 것인데. 참 낡았다. 오래된 이야기. 그러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야기에 대해 내가 무얼 더할 수 있을까. 영화 크레딧이 붉게 올라간다. 아직 현실로 완벽하게 나오지 못한 주변은 나를 콕콕 찔렀다. 관심과 공부가 다르듯, 스물이 넘어 처음 공부하기 시작한 냉전 시기승자에 의해 쓰여진 거열(車裂)당한 역사로 다 채울 수 없어 고통스러워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배울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배울 바에야 부족한 걸 덮거나 대충 가려버리려 했던 게 짜장 아닌지 싶어 조심스럽던 날. 그때 나와 지금 나 역시 계속 대결해 가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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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우성이 걸어 들어와담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탄성을 지를 우아한 단어로 겸손 빼지 않았다. 배우 곽도원은부끄럽다며 웃다감사하다맺었고, 배우 이경영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철학을 공부하고, 영화에 아이돌 그룹 빅뱅(BigBang) 리더 권지용(지드래곤, G-Dragon)의 노래를 두 곡이나 넣은 감독은구조와 시각을 회피해 바라보지 않고 공유하고 싶었다강조했다.

충무로를 다니며, 배우 지망생과 배우들이 모여 프로필을 돌리는 일을 구경하기 어렵게 됐다. 감독들은 저마다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월드와 씨제이 이앤엠은 강남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어 충무로에 남은 건 윤전기와 인쇄실, 오래된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 그런데도 보통명사가 돼 버린 ‘충무로 배우’는 그만한 상징성이 있다. ‘충무로 대표 배우’가 모두 모인 연말의 영화 강철비(스틸레인, Steel Rain), 사람들 가슴에 내리든 머리에 내리든 많은 이들을 향수 혹은 토론에 젖게 만들지 않을지.

참, 권지용의 노래는 ‘삐딱하게’, ‘Missing You’ 붙이자면 삐딱하게 서로를 그리워 하나 싶기도.

그리고 덧붙여 정우성은 망가져도 정우성. 아니, 오히려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정우성이라 사람들은 그를 더 사랑하게 될지도.

루시드폴의 ‘안녕,’을 듣다가

떠났던 봄은 언제나 다시 돌아와요. 사람이 생겨 다시 숲의 자락에 돌아갈 때까지, 봄은 계속 돌아올 것이어요. 사람이 났다 다시 바람이 될 때까지 계절을 이길 수 없을 거예요. 코트를 벗고 다시 얇은 속옷을 던지고, 다시 솜이 두둑한 옷을 여며요. 결국 우리는 빛과 흙, 물에 있으면서 나혼자 무엇이라도 아는 척, 가진 척 살다 지는 이들의, 최악을 겨우 벗어난 정도. 구름이 준 그늘과 나무의 실, 공룡의 흔적 정도를 빌렸다 별빛을 그리워하는 딱 그만큼의 정도.

떠났던 사람은 언젠가 돌아오죠. 그전 우리가 나눴던 것이 이미 사라져 다시 나눌 것을 구하려 마음만 급하다 모두 어쩌면 다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모두는 멀지 않은 곳에서, 너와 내가 고민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소한 심란을 나누고 있을 테니까요.

오늘은 어둠을 봤어요. 아니, 사실 그건 어둠이 아니라 가장 얕은 밝음이었죠. 그 곳곳에 박힌 희망들이 조금씩 잦아지리라 기대해요. 이제 어두운 우연은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