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치를 생각하다가

모든 언론사 모든 기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는 언론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친여나 친야로 분류되는 매체는 수년의 영향력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민주당계가 득세하면 보수계로 꼽히는 매체가 비판에 힘을 싣고, 보수당계가 청와대로1에 입성하면 반대로 진보를 기치로 건 글꾼들이 펜 또 키보드에 날을 세운다. 중도와 좌우 없이 그랬다고? 권력을 무너뜨린 대한민국 언론사를 보면 대개 크게 틀리지 않았으리라.

사내에서도 비슷하다. 대개 스스로 선택해서 정할 수 없는 여당 출입 기자, 야당 출입 기자는 누가 청와대 출입기자로 새벽잠을 줄여야 할지 가름되고, 이에 따라 정치부를 계속 고수할 건지 아니면 주특기나 회사 명에 따라 다른 길을 걸어갈지 정해진다. 이 모든 게 표심에 달렸기에 어느 기자도 5년의 하룻밤을 쉽게 넘기지 못한다.

가까우면서 먼 발치에서 권력이 태어나는 것을 본 지 다섯 해가 지났다. 양 날개는 몇번씩 꺾이거나 병을 앓았고 이제 다시 영향권의 그늘 아래 몇이 섰다. 되도록 관찰하면서 비겁하지 않은 질문을 품으려던 나 또한 어느 선택을 했고, 우리는 곧 그 결과 아래 놓일 것이다.

삶은 편안해질까. 아니면 퍽퍽해질까. 혹시 빵 터지지 않을까. 알 수 없지만 ‘누가 뽑히면 이민 가겠다’는 사람도 ‘무한 신뢰’가 부서진 사람도 각자 삶을 밟고 있는 것. 오늘의 위정자 선택이 당장 내 생활에 얼마큼 영향을 미칠지 또한 저마다 달랐고, 심지어 ‘나는 정치 관심없다’며 투표일마다 놀러 다니던 사람이 편안하게 죽기도 했다.

그런 공상도 이때쯤 해보게 된다. 두 명, 많으면 다섯 명쯤에서 권력자가 나오는 것은 옳은가. 그들을 세우는 데 (그게 공공일지라도) 이익집단화된 (건국 이래 사실상 지속돼 온 몇 개의) 정당이 사실상 선출해 그 중 고르는 것은 또 어떻고. 후보가 일백명 나오고, 기호를 무작위로 나눠주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빌린 후불제 인생을 잘 끌고 나갈 수 있을까.

혹자는 이즘(ism)의 시대는 끝났으며, 자본이 그 우위를 지배하고 있다 했다. 그러나 이런 ‘선거 뽕’ 맞는 시기쯤 되면 나는 그게 어느 자가 흘린 말인가 고민해보는 것이다. 생각은 돈에 녹았고, 나 또한 매달 25일 그것을 구걸해 받았다. 피와 땀 냄새, 고민의 체취가 내 더러운 통장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이렇게 또 하룻밤이 지날 거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어떤 사람의 놀라운 성취를 바라보다가

재개발 투쟁을 벌이는 낡고 후미진, 상습 침수지역의 반지하 방값이 쌀까, 아니면 산 정상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고바위에 있는 집 삯이 낮을까. 어떤 사람도 쉽게 답할 수 없어서 찾아볼 때면 그마저도 가격이 쉽지 않아 놀랄 때가 있다. 가지지도 못할 서울 하늘이 아래라 그런 적도 있었고 바로 옆이 느닷없이 주민센터부지로 선정되면서, 골목 아래에서 하늘을 보고 굴뚝 위에서 야경을 보던 사람들은 옆으로 옆으로 옮겨갔다.

집의 이름은 자꾸 변했다. 고시원보다 좁은 한 평 반, 세련된 말로 사 점 구 제곱미터 공간은 고시’텔’이 됐고 어떤 방 한 칸, 속칭 ‘원룸’은 부동산 등기에는 고시원이 돼 취사를 할 수 없어서 단속이 뜨면 가스레인지나 전기레인지, 속칭 ‘인덕션’을 서랍 아래로 가려야 했다. 공인중개업소들은 그런 집을 자기 옆집 아들에게 팔지 않았다. 안면이 없는 남에게만 웃으면서 그런 형편을 내밀었다. 어느 사람이 지독히 돈을 모으는 탓은 부모가 가진 집과 같이, 아주 좁아서 웅크리더라도 몸을 붙일 수 있는 욕조 한 개 놓고 싶어서였다. 그 남자의 스물 세 살 소원은 목욕탕 가서 돈을 내고 남에게 등의 때를 맡기는 것이었다.

그런 순간이 되면 그 치에게 더는 철학과 민주주의, 평화나 페미니즘, 심지어 부모나 남의 재산 따위까지도 자신의 삶에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들이 아니게 됐다. 시간제 노동, 아르바이트만 해도 백 수십만 원이 통장에 생기지 않느냐는 지지부진한 말을 늘어놓는 정치인에게의 투표도 별 게 아닌 아침이 열리는 것이다.

위로 가는 계단은 높은 사회에도 낮은 골목에도 있었다. 값이 나가는 서울 종로 북악산 자락의 어느 집과 서울 어느 구 어느 동의 산자락 달동네는 시계가 좋은 날 서로 마주볼 일 있을지 모르나 삶의 계단 앞에서는 달랐으니까, 다를테니까.

야자나무의 다른 이름인 종려나무는 한국의 남해나 제주도, 동남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일테지만, 그 나뭇가지가 황금으로 돼 있든지 은으로 돼 있든지 어떤 이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눈 앞에 종려 열매 모양의 빵이 있다면 좋아했을 테다.

어떤 사람의 놀라운 성취를 바라보다가 괜히 심술 궂게 오래된 희망을 꺼내 생각해봤다. 우리는 어떤 사회 속에서 각자의 냄새나 천성 아니면 교육에서 죽어가는가, 굳이 가보지 못한 제곱미터 당 수천만 원의 집에 거짓 복수심만 키우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