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우 끝판 선물, 트럼프 곁 하루

하늘이 맑다. 아침에는 먼지가 많았는데 점점 나아지더니 오전 11시가 가까워오자 태양이 평소보다 먼저 강렬해 졌는지 먼지도 모두 사라졌다. 멀리 서강대교 남단의 끝자락이 보인다. 번쩍거리는 불빛이 지나가더니 경찰 오토바이가 국회대로를 가로지른다. 그가 한강의 모래섬 위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TV 예능프로그램 사회자,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주인공,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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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는 미 대통령 전용 캐딜락 리무진인 더 비스트(The Beast)를 따라 선회한다. 17억원짜리, 미사일을 맞아도 안에서 대응할 수 있다는 차다. 국회 외곽 도로는 전면 통제됐고, 경찰과 정보당국 요원들도 곳곳에 길목을 지켰다. 건너편에서는 트럼프 방한 찬성 집회와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역대급 경호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내 시점에서는)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멀리 국회의사당 지붕에는 스나이퍼도 서 있었다. 주변에 있는 기자들끼리 “사다리, 높은 위치에서 찍기 위해 사진기자들이 주로 가지고 다닌다, 에 올라가지 마라.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차 지나갈 때 올라서면 번쩍! 하는 순간에 저세상 간다” 는 농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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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통제에 오히려 신난 것은 여의도 주민과 국회의사당 인근 회사원들. 마지막 가을 낙엽을 찍기 좋게 도로가 비자,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8차선 한가운데에서 낙엽을 사진에 기록하며 싱글벙글.

 

차가 들어가고, 이제 내가 들어갈 차례. 경찰과 국회 경위과, 정보당국, 미국 중앙정보국, 미국 대통령 경호실 등에서 통제해 신분증 검사는 물론 임시취재 허가까지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본청에 들어섰다. 시간은 약 3배 이상 걸렸다.

 

국회 내부는 실은 무척 복잡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숫자 팔(8)을 두개 어긋나게 겹쳐놓은 형태인데, 그 중간을 통째로 비웠다. 기자들이 쓰는 국회 프레스센터 ‘정론관’은 가운데 통로를 내줬다. 국회 연설 참석 인원 외에는 정말 기자 몇명, 국회 사무처 직원 몇 명만. 같은 공간인데 공기는 두개로 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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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 회사 근접은 정치부 A기자, 근접이라고 해봤자 (정치부 사정과 국회미디어담당관실에서 이번 취재를 어떻게 정했는지 잘은 모르지만) 방청석에서 기사를 송고하는 게 전부일지 모른다. 근접은 가지 못할 것을 알기에 마음을 비우고 있다가 화장실 옆 틈으로 그를 봤다. 정말 하나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멜라니아 트럼프(Melania Trump)도 그의 곁에 있었고, 나중에 내가 찍은 영상을 보니 그 바로 앞 남자는 정세균 국회의장이었다. 내 뒤로 국회 직원 몇명이 몰려들어 함께 구경했다. 곧바로 마감하러 출발해야 했지만 곁에 있던 직원들이 “트럼프는 작년부터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봐서 그런가, 마네킹이 움직이는 것 같다. 멜라니아는 정말 모델 포스가 남다르네”라며 떠드는 말은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인이면서 연예인인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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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들이 밟은 카펫만 남았다. 이것도 8일 오후 곧바로 치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국기 게양대에는 성조기가 내려가고 국회 깃발이 다시 걸렸다.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갈 영등포구의 한켠, 여전히 우리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